‘야구 천재’ 이형종 … 팬은 “야잘잘” 그는 “야절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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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형종의 활약 덕분에 LG는 믿을 만한 1번 타자가 없다는 고민을 단숨에 해결했다. 그는 올시즌 44경기에서 타율 0.384를 기록 중이다. [LG 트윈스]

이형종의 활약 덕분에 LG는 믿을 만한 1번 타자가 없다는 고민을 단숨에 해결했다. 그는 올시즌 44경기에서 타율 0.384를 기록 중이다. [LG 트윈스]

37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숱한 천재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쏟아지는 기대를 이기지 못한 '박재(薄才)가 되어버린 천재'도 많다.

프로야구 LG 상승세 이끄는 톱타자 #부상으로 늦은 출발 … 타율 0.384 #1번 타자 맡아 팀 공격 첨병 역할 #골프로 외도했다가 돌아오기도 #투수서 4년 만에 정상급 타자 변신 #“갈 길 멀어, 4~5년은 꾸준히 해야”

그래서 더 '야구천재' 이형종(29·LG 트윈스)의 부활이 반갑다. 멈춰버린 줄 알았던 그의 천재성은 프로입단 10년째인 올해 다시 빛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형종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야구 뿐이란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형종을 ‘야구 천재’라고 부르는 건 그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다. 투수 출신인 그는 2014년 타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정상급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형종은 올 시즌 44경기에 나와 타율 0.384(172타수 66안타)을 기록 중이다. 아직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타격 3위에 해당한다.

그는 지난겨울 전지훈련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개막 한 달 만인 4월 20일에야 시즌을 시작했다. LG의 1번 타자를 맡은 이형종은 출루율 0.454로 공격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년 간 지속된 LG의 1번 타자 고민을 날렸다. 이형종부터 이어지는 LG 타선은 연일 무섭게 터지고 있다. 팀 타율이 0.302(2위)다. 이형종은 "(류중일)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타석에 들어선다. 좋은 타격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팬들은 이형종의 천재성을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야잘잘)'고 표현한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야구는 절실한 사람이 잘한다"란다.

이형종은 2007년 중앙일보가 주최한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광주일고를 상대로 눈물의 역투를 펼쳤다. 당시 치열했던 승부는 고교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준결승에서 147개의 공을 던진 그는 하루 뒤 열린 결승전에서 1회 말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힘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그는 광주일고에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맞고 역전을 허용한 뒤 펑펑 울었다.

이형종은 “지금도 가끔 그 영상을 본다. ‘왜 울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창피하다. 어릴 때 난 승부욕이 강했다. 사소한 것에도 승부욕이 넘쳤다. 심지어 게임을 하다 지면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기도 했다”며 “지금은 그 승부욕을 야구하는데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008년 LG에 입단한 그는 고졸 신인으로선 파격적인 계약금 4억3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입단 후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재활과 수술을 반복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 마음이 조급했다. 좌절했고, 방황했다. 2010년 1군 마운드에 두 차례 올라 데뷔 첫 승을 맛봤지만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야구를 그만뒀다.

새로운 인생을 꿈꿨던 그는 프로골퍼로 변신하기 위해 골프클럽을 잡았다. 그는 “미친 듯이 골프 클럽을 휘둘렀다. 그런데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며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더 커졌다. 골프를 했던 경험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것 같다. 나에겐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형종. [LG 트윈스]

이형종. [LG 트윈스]

그라운드로 돌아온 이형종은 지난해 4월까지 타율 0.367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5월부터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결국 타율 0.265로 시즌을 마쳤다. 이형종은 “전쟁터에 나간 병사라면 기본적으로 총 쏘는 연습이 충분히 돼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실전에서 총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며 “투수를 하다 타자로 변신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24시간 야구 생각만 해도 모자랐다.

자면서도 야구하는 꿈을 꿨다. 열정이 지나쳤던 것”이라고 했다. 숙소에서도 잠들기 전까지 장갑을 끼고 배트를 휘둘러야 직성이 풀렸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체력도 떨어졌다. 시즌이 끝나고 4개월 동안 문제점을 찾는데 몰두했다”고 털어놨다.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팀 선배였던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조언이 컸다. 이형종은 “이종열 위원이 ‘너는 뒤늦게 타자로 전향해서 더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그게 너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70% 정도 이해하고 있었는데, 조언을 듣고 나머지 30%가 채워졌다”고 했다.

이형종. [LG 트윈스]

이형종. [LG 트윈스]

최근 이형종은 뒷머리가 긴 ‘맥가이버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멋을 부리는 게 아니다. 누가 뭐라든 내 야구를 펼치고 싶다는 의지”라며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까진 잘 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이형종이 올 시즌 초구를 공략해 기록한 타율은 0.636(33타수 21안타)에 이른다. 그는 “요즘 상대 투수들도 초구에 신경 쓰는 것 같다. 공부해야 할 게 더 많아졌다”고 했다.

이형종은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타자로서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 처음 타자로 홈런을 쳤을 때(2016년 시범경기) 10% 정도였다면 지금은 40~50%는 올라온 것 같다. 4~5년은 더 꾸준히 잘해야 한다”며 “지금 잘하고 있지만 분명 슬럼프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때 흔들리지 않는 게 올해 목표다. 무엇보다 팀이 계속 이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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