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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의 새 물결] 3. 다시 각광받는 18세기 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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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8세기 조선사회에 대한 연구는 교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문학의 총아로 확고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것은 문학계.미술사학계.국사학계다.

지식 사회에서는 무엇 때문에 18세기에 대해 주목하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력적인 현상과 자료의 존재를 들 수 있다. 18세기의 인간은 강한 자의식을 발산하고,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발산이 사회적으로 용인됐다.

예컨대 회화사에 두각을 나타낸 몇몇 화가들에게서 창작을 향한 광적인 열정과 집착을 발견할 수 있다. 화가만이 아니라 문인.과학자.기술자 등 전문성을 띤 매니어들이 열정을 폭발시키고 있다.

유가 이데올로기에 억눌려 있던 다양한 욕구가 분출한 것이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사실은 그러한 존재와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다른 시대에 비해 풍부하다는 점이다.

최근의 18세기 연구를 볼 때 '실학(實學)'이라는 자장 안에서 연구되던 학계의 오랜 관행과는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낸다.

18세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후기 사회를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역사 발전과 함께 고찰하려는 시야의 확대와 좀더 미시적으로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려는 노력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방향의 전환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18세기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심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학.영문학.불문학을 전공하는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18세기 학회'가 구성돼 활동 중이다. '국제 18세기 학회'가 각국의 18세기를 연구하는 모임으로 확산된 결과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18세기는 전통적 가치와의 충돌, 도시문화의 발달, 열정과 자아의 중시, 여행문화가 발달하는 현상 등에서 인류사적 동질성을 보인다. 단순한 비교를 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의 18세기 문화가 다루어진다면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18세기 조선 사회는 자아의식이 분출하는 시기다. 사대부의 이상과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다양한 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반항적 정신으로 충만해 있고, 그것이 문학으로, 예술로 표현됐다.

동아시아의 안정된 국제질서 속에서 18세기 들어 조선은 청.일본 등과 물적.인적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개방의 길에 들어섰고, 그것이 지식인들을 자극해 묵은 가치와 새 가치의 충돌이 빈번했다.

18세기 인간들은 동시대인의 의식을 표출하는 독특한 시대적 정신을 갖고 있다. 그것을 이 시대 사람들은 '병세(幷世)'라는 말로 표현했다. 현대어로 말하면 '동시대'라는 의미로 번역해야 할 병세는, 곧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잘 표명한다.

이규상의 '병세재언록'이나 18세기 문학인의 시와 산문을 뽑은 윤광심의 '병세집', 조선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유구의 지식인까지 범위를 넓혀 동시대 인간의 모습을 담으려 한 유득공의 '병세집'이 출현한다.

그 저작은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자의식의 분출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그로 인해 18세기는 국경을 넘어선 동아시아 지식인의 연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과 중국.일본의 지식인 상호 간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것이 바로 18세기였다.

홍세태.홍대용.박제가.이언진을 비롯한 많은 조선 학자의 초상화를 중국과 일본의 화가들이 그린 것이 현존하고, 유득공과 박제가는 저명한 나빙(羅聘)의 그림 '귀취도(鬼趣圖)'에 감상의 필적을 남긴다.

안대회 교수 영남대 한문교육학

◇ 약력=▶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 졸업 ▶대표적 '북학파(北學派)'인 박제가를 중심으로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해 옴 ▶저서로는 '조선후기 소품문의 실체'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와 '조선후기 소품문의 실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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