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3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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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부윤 앞으로 나온 무송이 큰 칼을 목에 쓴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부윤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이외전을 때려 죽였느냐? 정말 빚 삼백 문을 받아내려고 말다툼을 하다가 죽이게 된 것이냐?"

무송이 울부짖다시피 고하였다.

"부윤 나리는 현명하시고 청렴결백하신 줄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나리 앞에 서니 캄캄한 밤길을 걷다가 새벽 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햇빛 아래 모든 숨은 것과 거짓된 것들이 드러날 줄 믿습니다."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느냐니까 햇빛 타령을 하고 그러느냐? 속히 대답하라."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제가 출장을 간 사이에 형수가 서문경이라는 자와 눈이 맞았는데 형이 그 사실을 알고 현장을 덮치려 하자 서문경이 형을 때려 죽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문경을 고발하는 고소장을 올렸으나 서문경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이는 바람에 현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형의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서문경을 찾으러 다니다가 서문경과 이외전이 술집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외전이 서문경으로부터 또 뇌물을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문경을 잡으러 뛰어들었으나 서문경은 달아나고 이외전만 내 손에 잡혔습니다. 이외전이 달아나려고 나를 치려 하여 내가 제압을 하는 과정에서 그만 사고가 생긴 것입니다. 저는 뇌물을 받아먹고 억울한 사람을 더 억울하게 하는 탐관오리 이외전을 다만 혼내주려고 한 것뿐인데 도가 지나쳐서 목숨까지 앗고 말았습니다."

"검시 보고서에 보면 심지어 고환도 으깨어져 있었다고 하였는데, 사람을 혼내주려고 한 것치고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

"저도 심했다고 여겨집니다. 나는 그런 놈은 고자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빚 받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뇌물을 받아먹고 재판을 어그러지게 하는 관리를 혼내주려다 그렇게 된 것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저는 빚 삼백 문 정도 가지고 죽이네 살리네 악을 쓰는 그런 좀팽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죽였으니 이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부윤 나리, 내 형을 죽인 자들도 함께 잡아들여 벌을 받게 해주시기를 앙망하옵니다. 그리고 뇌물을 먹고 고소장도 접수하지 않은 관리들도 엄하게 벌해주십시오."

평소에 관료들의 부정축재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던 부윤 진문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패한 청하현 관리들을 모조리 내어쫓기로 마음먹었다. 무송의 살인사건보다도 더 큰 악이 청하현 현청에 도사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일단 무송의 형 무대의 사인(死因)을 새롭게 밝힌다는 명목으로 뇌물 공여의 장본인인 서문경부터 잡아들이고 그 다음 서문경과 놀아난 반금련, 중매 역할을 한 왕노파, 처음에 무송을 도와 증인이 되어준 운가, 무송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달아난 검시관 하구 등을 차례대로 잡아들여 신문하면 살인사건의 진상뿐 아니라 거대한 뇌물 상납 고리도 하나씩 드러나고 말 것이었다.

진문소는 청하현으로 공문서를 보내 무대의 사인을 처음부터 조사하도록 하면서 서문경을 비롯한 증인들을 잡아두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송의 목에 씌어 있는 큰 칼을 작은 칼로 바꾸고 감방도 지내기에 편안한 곳으로 지정해주었다. 부윤이 무송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보고 옥졸들도 돈 한푼 받지 않고 무송에게 음식과 술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이 사실을 어느 동평부 관리가 은밀히 알려주자 서문경은 그만 사색이 되고 말았다. 뇌물을 먹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던 서문경이었지만 동평부 부윤 진문소만은 예외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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