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급격 인상 계속되면 일자리 14만개 위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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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분배지표 악화와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 효과가 90%” 발언으로 격화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국내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원(KDI)이 뛰어들었다. 최경수 KDI 선임 연구위원이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서다.

KDI 분석...“2년간 15%씩 올리면 2020년 14만개 영향” #“아직까지는 최저임금의 고용 악영향 근거 없어” #“내년 이후에도 급격 인상하면 득보다 실 커”

보고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현재까지는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지만, 내년과 내후년에도 급격히 인상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 이행을 위해서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내년과 내후년에도 각각 15%씩 올려야 한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미국과 헝가리 등의 외국 선례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최저임금을 완만하게 올린 대표적인 국가다. 보고서는 1977년부터 4년간 대규모로 진행됐던 미국 최저임금위원회 조사를 인용하면서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고용이 0.15% 감소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소개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탄력성이 -0.015에 불과하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후의 조사 결과에서도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거나 있더라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값’이라고 결론 내렸다.

완만한 인상 외에 미국의 최저임금 절대 수준이 낮은 편이라는 점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이유의 하나로 지목됐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임금 중간값 대비 50%를 넘어섰지만, 미국은 2016년 현재 35%에 불과하다.

반면 헝가리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최저임금을 60%나 올린 국가다. 그 결과 고용이 2%나 감소했다. 최저임금 10% 인상 기준으로 하면 고용이 0.35% 감소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탄력성이 미국보다 큰 -0.035였다.

보고서는 이들 두 개 국가의 탄력성을 임금 근로자가 2000만명인 한국에 대비하면 고용 감소 예상치는 3만6000~8만4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전체적으로 고용 자체가 감소한 상태는 아니다. 2~4월 취업자 수증가 폭이 월 10만명대로 크게 둔화했을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이 거의 없다고 결론 낸 이유다. 보고서는 3조원에 달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의 존재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보고서는 취업자 수증가 폭 둔화를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보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임금 근로자 증가 폭이 1월 32만명에서 4월 14만명으로 축소됐지만, 1월 증가 폭이 이례적으로 높았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평균치인 월 26만명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 게 온당하다는 것.

또 올해는 지난해보다 인구 증가 폭이 8만명 줄었는데 이는 임금근로자 5만명 축소 효과와 맞먹는다고 봤다. 결국 26만명에서 5만명을 뺀 21만명과 14만명을 비교하는 게 온당하다는 얘기다. 이 경우 축소된 증가 폭은 7만명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여기에서 또 자동차나 조선업 등 대규모 제조업 구조조정 대상 인력을 제외해야 제대로 수치라고 주장했다. 결국 “아직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없다”는 청와대나 정부의 시각과 동일한 셈이다.

최 연구위원은 이날 진행한 브리핑에서 “4월까지 고용동향을 봤을 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없거나 아주 작다”면서 “구체적으로는 2018년도 통계조사가 이뤄진 이후에야 결과를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를 위해 내년과 내후년에도 올해처럼 급격하게 인상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제기한 것처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최저임금이 15%씩 인상되면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4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향해 계란을 던지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하며 전국에서 동시다발 총파업투쟁을 열었다. 여야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본회의에서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함께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8.5.28/뉴스1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향해 계란을 던지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하며 전국에서 동시다발 총파업투쟁을 열었다. 여야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본회의에서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함께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8.5.28/뉴스1

보고서는 “이 경우 서비스업 저임금 단순노동 일자리가 줄어들어 단순기능 근로자의 취업이 어려워진다.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하위 30%의 근로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면 경력에 따른 임금상승이 사라져 근로자의 지위 상승 욕구가 약화하고 인력관리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지원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고 사업주가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돼 임금을 올리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프랑스가 2005년 최저임금이 임금 중간값의 60%에 도달한 이후 인상을 멈춘 것이나 독일이 2년마다 최저임금 인상을 논의하는 이유도 바로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최저임금은 경제 전반에 걸쳐 가격과 근로 방식을 조정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에 빠른 인상은 조정에 따른 비용을 급속히 증가시킨다”며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15% 인상되면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OECD 최고 수준인 프랑스 수준에 도달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세종=박진석·하남현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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