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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만 201개' 이종민 SK텔레콤 상무가 말하는 한국 ICT의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인터뷰] '그룹내 최연소 승진' 이종민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

이종민(40)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은 지난해 12월 SK그룹에서 30대로는 유일하게 상무로 승진해 그해 그룹 내 최연소 임원 명단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소지한 특허만 201개(국내 139개, 국외 62개)인 그는 SK텔레콤은 물론 그룹 내에서 '발명왕'으로 통한다.

KAIST 공학 석·박사 출신으로 2010년부터 SK텔레콤에서 일하고 있는 이 원장은 2016년 길게는 30초가 넘던 지연 전송 시간을 3초로 줄인 모바일 방송 기술 'T라이브 스트리밍'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360도로 가상현실(VR) 화면을 볼 수 있는 생중계 기술, 그리고 여러 이용자들과 동시에 VR 환경을 즐기는 '소셜 VR'도 그의 작품이다.

이종민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습관을 통해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기술로 발전시킨다"며 "특허 출원에 도전하는 것은 '테크 리더십'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 강조했다. [사진 SK텔레콤]

이종민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습관을 통해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기술로 발전시킨다"며 "특허 출원에 도전하는 것은 '테크 리더십'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 강조했다. [사진 SK텔레콤]

이 원장은 탁월한 연구·개발(R&D) 실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전기통신연합(ITU-T) 등 국제 공식 표준화 단체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만난 이 원장은 국내 기업들이 왜 힘을 합쳐야 하는지와 '한국 유니콘 기업(1조원 이상 가치가 있는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T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의 개발 과정을 예로 들었다.

'지연 시간 30초→3초로' 모바일 생방송 기술 개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건 구글·애플이 만든 외국 기술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들은 생방송 전송에 적합하지 않았어요. 지연 시간이 30초가 넘었거든요. 한순간에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 경기를 30초 늦게 스마트폰으로 보면 의미가 없잖아요. '우리 기술로 지연 시간을 확 줄여보자' 싶어서 삼성전자 등과 손잡았습니다. 애플·구글·퀄컴 등은 콧방귀를 끼더라고요. 하지만 2년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최초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 표준화까지 성공했습니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SK텔레콤 미디어 기술원은 ▶미디어 처리·전송 기술 개발 ▶VR·증강현실(AR) 등 실감형 미디어 기술 개발 ▶맞춤형 콘텐트 추천 기술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미디어 기술·서비스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려가는 것은 5G(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5G가 상용화되면 학생들이 미세먼지를 뚫고 경복궁에 소풍 가는 일은 없어질 거예요. 교실에서 다 같이 헤드셋을 착용하기만 하면 경복궁에서 가상으로 뛰어놀 수 있거든요. 지금 4G 네트워크에선 3명만 동시에 접속해도 과부하로 연결이 끊어집니다. 20명이 한꺼번에 경복궁 'VR 소풍'을 즐기려면 5G 기술은 필수적이지요."

이종민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G 등 차세대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몰입형 미디어 기술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며 "가까운 미래에는 학생들끼리 VR로 소풍을 가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사진 SK텔레콤]

이종민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G 등 차세대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몰입형 미디어 기술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며 "가까운 미래에는 학생들끼리 VR로 소풍을 가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사진 SK텔레콤]

5G가 상용화되면 초고화질(8K~16K)로 구현되는 가상현실(VR)·V2X(차량·사물 간 통신)·V2V(차량 간 통신) 등과 관련한 서비스·콘텐트를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미 현재 네트워크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튜브·페이스북 등 미디어 트래픽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원장은 "근로 시간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는 것도 VR·AR 등 몰입형 미디어 서비스 시장에 큰 호재"라며 "6 DoF(자유도·앞뒤 좌우 기울기와 좌우 회전까지 인식)로 가상에서 실감 나게 움직이는 게임을 이미 소니·오큘러스 등이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크 리더십' 발휘하기 위해선 특허가 필수

그는 대학원생 시절인 2006년부터 각종 국제기술 표준화 단체에서 의장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표준화 단체에는 온갖 글로벌 회사 임직원들이 다 모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못 만들면 회사에서 잘린다'는 절박함이 있어요.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끝장 토론을 합니다. 연중 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메모→정리→특허 출원→상용화→표준화 과정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 원장은 종종 그룹 내 계열사에 강의를 다니며 200개가 넘는 자신의 특허 취득 비법과 아이디어 구상 습관을 소개한다.

그는 "회사에서 늘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테크 리더십'입니다. 기술 경쟁이 치열하니 특허 소송도 자주 붙잖아요. 실제로 회사에서도 이런 일로 사업을 접은 경우도 꽤 있습니다. 테크 리더십, 테크 오너십을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가 특허입니다. 집이 있으면 집문서가 있는 것처럼 특허로 자신의 기술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특허를 201개나 출원한 이 원장의 비결은 일상 생활 중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이다.

"자다가 일어나서, 또는 예배보다가, 회의하다가, 운전하다가도 차를 세우고 스마트폰 메모장을 켭니다. 아이들과 만화 캐릭터 뽀로로·에디 얘기를 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매주 주말마다 이를 한꺼번에 정리합니다. 정리하는 것도 여러 방법이 있죠. 책·논문·블로그 등을 주로 활용하고요."

그는 "내가 정보통신기술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 기술을 글로벌하게 히트시키고, SK텔레콤보다 더 훌륭한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 간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선단(船團)을 만들어서 외국으로 나갔던 것처럼, 국내 기업들도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잼을 파는 사람도 빵을 파는 사람도 우유를 파는 사람도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밥 지어놓으면 고춧가루 뿌리는 출혈 경쟁만 있습니다. 고객들은 계속 옮겨 다니고 서비스 만족도도 떨어지고요."

그는 "통신사가 만나기만 하면 담합이라고 규정짓는 시각도 문제"라며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만들어 대기업·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쳐 성공하는 한국식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합작 회사도 생겨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선영·김정연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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