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지금 ⑦ 자원 민족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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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왼쪽)이 이달 초 브라질에서 열린 미주개발은행(IDB) 연례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방문 기간 중 브라질에 수출하는 자국산 천연가스의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벨로 호리존테(브라질) 로이터=뉴시스]

-천연가스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겠다는 배경이 뭔가.

"천연가스는 우리의 자원이다. 그렇지만 여태껏 우리 뜻대로 못해 왔다. 외국자본이 가격을 정하고, 생산량도 결정해 왔다. 이제부터 그걸 우리가 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자본에 매각해 민영화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불법적 계약이거나, 법적인 하자가 많은 계약이었다. 사익을 위해 국가 자원을 함부로 팔아넘긴 과거 정권 책임자들의 잘못이다. 그걸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카를로스 비예가스 경제기획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오른팔이다. 대선 후보 '경제 과외선생'에서 실세 장관이 됐다. 지금 그는 볼리비아 경제의 새 틀을 짜고 있다. 핵심은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다.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54조 입방피트. 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많다.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는 모랄레스의 선거 공약이었다. 실행에 옮기는 건 비예가스의 몫이다. 외국기업들은 그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자원 민족주의'의 위세다.

세계 최대 원유 보유국으로 등극한 베네수엘라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지난달 31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광물 자원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새 법에 따라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DVSA)는 외국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32개 유전 개발사업에서 60%의 지분을 넘겨받아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 못하겠다고 버틴 프랑스의 토탈과 이탈리아의 에니에 대해서는 지분 몰수 결정이 내려졌다.

외국기업에 부과하는 석유 로열티는 16.6%에서 33.3%, 소득세는 34%에서 50%로 상향 조정됐다. 9일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페루의 좌파 민족주의 후보 오얀타 우말라도 자원 민족주의 대열 합류를 공약했다.

에두아르도 페이나도 테란 볼리비아 산업연합회 회장은 "남미의 자원 민족주의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석유.천연가스 등 국제 원자재 시세는 47개월째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친디아(Chindia) 요인이 크다. 하지만 12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남미 내 원자재 투기 자본이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늘어난 수입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당장의 필요에 따라 지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기예르모 모랄레스 볼리비아 상업회의소 회장은 경고했다. 투기 자본이 빠져나가면 원자재 가격의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미의 자원 민족주의는 고유가 위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라파스=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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