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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거래 의혹에 고발 러시 … 곤혹스러운 ‘김명수 사법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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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의 파문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로 번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 추진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재판을 매개로 협상을 벌였느냐가 의혹의 핵심이다. 해당 재판의 이해 당사자들이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왜곡된 결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줄이어 피해 보상과 재심을 요구하고 형사 고발까지 예고하면서 김명수 사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블랙리스트 3차 조사’ 후폭풍 #문건 거론 단체들, 보상·재심 요구 #조사단선 “재판 영향 없었다” 결론 #법원, 판사들 긴급회의 잇따라 소집 #“수사 피하기 힘든 상황” 의견 많아

KTX 해고 승무원과 ‘KTX 해고 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 관계자 등 5명은 30일 오후 대법원장 비서실장인 김환수 부장판사와 40분간 면담했다. 이 면담은 전날 김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대법정까지 진입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대책위는 이날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조사 및 관련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 면담을 재차 요구하며 KTX 승무원 외에 다른 재판 거래 의혹 사건의 피해자들도 다같이 대법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발 더 나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KTX 승무원들뿐 아니라 전교조, 통합진보당 사건 관련자들과 보조를 맞춰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뜻 아니냐”며 “그 경우 양승태 코트에서 확정된 재판에 대한 불신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전교조, 긴급조치 피해자 모임 등의 단체와 함께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공동 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대책위 측은 KTX 해고 소송 사건에 대해 “법원이 직권 재심을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재심이란 이미 확정된 판결이 나온 사건에 중대한 하자가 있을 경우 다시 재판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 법원의 자체적 재심 청구는 불가능하다. 민사사건에서는 원고 또는 피고가, 형사사건에서는 검사 또는 피고인 측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대책위 측은 “사법부 스스로가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직권 재심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2006년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KTX 승무원들은 코레일 측의 계열사 이적 제안을 거부한 뒤 그해 5월 21일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후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고 1, 2심은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5년 2월 원심을 파기했고 같은해 11월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승무원들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의 반발은 지난 25일 특별조사단(특조단)이 당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흥정’을 했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을 공개한 데서 비롯됐다. 문건에는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협력 사례’로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 적시됐다. 특조단은 “해당 문건은 당시 행정처에서 재판 이후 협상용으로 작성했고,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결론 냈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사법부 문턱까지 들이닥치자 법원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다. 법원행정처는 29~30일 김창보 행정처 차장 주재로 잇따라 실장 및 부장판사급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선 사법부가 검찰 수사를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또한 법원행정처에서 직접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해야 한다는 의견과 김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협조 의사를 밝히는 선에서 사태를 정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특조단은 김 대법원장에게 이모 부장판사를 비롯, 이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의 부적절 행위를 개별 정리한 보고서를 전달했다.

손국희·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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