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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2차 피해 막는다…대학 329곳 전담기구 실태조사

중앙일보

입력

서울 한 전문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학교 측에 신고했다가 교수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조사 중이다. 여학생의 주장에 따르면 관련 내용을 상담했던 또 다른 교수가 대화 내용을 녹음해 가해 교수에게 전달했다. 철저하게 보호돼야 할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된 것이다.

검찰계에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대학가로 번지고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제도나 기구가 부족해 2차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담당 기구가 학교상담센터 부설로 설치돼 있는 등 위상이 낮고, 조사·상담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검찰계에서 촉발된 미투운동이 문화계를 넘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8일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 전북여성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검찰계에서 촉발된 미투운동이 문화계를 넘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8일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 전북여성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교육부는 31일부터 약 3주간 전체 329개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상담센터’ 운영 실태조사를 한다.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담당 기구의 현황, 피해자 상담과 조사 처리 과정 등을 분석해 대학 성폭력 담당 기구의 운영과 기능을 개선하려는 목적이다.

이에 앞서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자문위원회’(자문위)는 25일 회의를 열고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제안했다. 지난달과 이달에 걸쳐 대학 센터 담당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과 요청사항 등을 반영한 내용이다.

자문위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센터’(상담센터)가 취업 등을 지원하는 학생상담센터 부설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인력이 부족한 점을 가장 큰 문제로 봤다. 이에 상담센터를 총장 직속의 독립기구로 설치하고, 상담·조사 등을 위한 정규직 전담인력을 확보할 것을 권고했다.

또 사안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높이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 내 위원회가 동료 교수 등 내부자 위주로 구성되면 공정하게 사안을 조사·심의하고 징계를 내리기 어려워서다. 이를 위해 자문위는 심의·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때 교직원·학생·외부위원을 반드시 참여시키고 성별을 균형 있게 구성할 것을 주문했다.

서울 한 여대에서 '미투' 폭로가 나온 한 교수 사무실에 학생들이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모습. [연합뉴스]

서울 한 여대에서 '미투' 폭로가 나온 한 교수 사무실에 학생들이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모습. [연합뉴스]

자문위는 상담센터 내에서 상담업무와 조사업무를 분리해 별도의 인력이 담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담과 조사 인력이 구분되지 않으면 피해자의 상담·치유보다는 조사 등 행정업무에만 집중할 우려가 있어서다. 또 신고 내용과 관련해 경찰 수사 등이 이뤄질 때는 징계 등을 신속히 진행해 추가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의 신원과 개인정보 유출을 금지하는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가해자가 교원일 경우 수업에서 배제하고,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 학생이 정신적 고통으로 수업이나 과제 등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출석 인정, 학점이수 등 학사관리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교육부는 자문위의 권고안을 토대로 법령 개정, 예산 확보,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 등 대학 현장의 지원 정책을 추진한다. 또 초·중·고, 대학의 상황에 맞는 사례 중심의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과 예방 교육 연수 자료를 개발해 올해 안에 보급할 계획이다.

김상곤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장(교육부 장관)은 “자문위에서 제안된 권고안을 정책 추진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의 토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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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t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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