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장에게 수억 뇌물 의혹 병원 … ‘연구 중심’ 선정돼 국비 203억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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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보건복지부 소속 고위 공무원이 대형병원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고 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 계획을 알려준 혐의로 구속됐다. 해당 대형병원은 국책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수백억원의 국비를 지원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업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길병원에 정보 제공한 공무원 구속 #“당시 쟁쟁한 병원들 탈락해 말 많아” #복지부 “뇌물 사실이면 선정 취소”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가천대 길병원에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3억5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복지부 국장급 공무원 허모(56)씨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허씨는 2013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길병원 법인카드 8개를 건네받아 유흥업소와 스포츠클럽, 마사지업소, 국내외 호텔 등에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허씨가 지난 2012년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담당하는 부서인 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 재직 당시 길병원 측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계획, 법안통과여부, 예산, 선정병원 수 등을 알려주고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구중심병원은 개별 병원이 신약·신의료기기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당시 복지부는 “연구역량이 뛰어난 병원을 평가해 지정한다”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길병원은 2013년 4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 9개 병원과 함께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25개 병원이 신청서를 냈지만 15개 병원이 고배를 마셨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연구부원장은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 선정 작업 준비에만 몇달간 매달렸다”면서 “연구비 지원에다 병원 내부 분위기, 명칭이 갖는 상징성 등을 고려하면 탈락 시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당시에 서울성모병원 등 쟁쟁한 병원이 떨어지고 길병원이 붙어 선정 기준이 뭐냐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임숙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장은 “선정 과정은 공정했다. 외부의 보건의료 R&D전문가들을 평가위원으로 모셔 심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특정병원에게 몰아 줄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길병원이 선정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라며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만 문제를 알려주고 시험치는건데, 채점을 다른 선생님이 했다고 해서 공정하느냐”라고 지적했다.

길병원은 다른 병원에 비해 유독 많은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부터 5년간 연구중심병원 가운데 8개 병원이 14개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총 1022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길병원은 ‘대사성질환 혁신 신약 개발’과 ‘뇌질환 진단기술 선진화를 위한 개방형 연구 비즈니스 플랫폼 구축’ 등 연구 과제 2개를 수행하고 202억8500만원의 예산을 지원 받았다. 전체 연구비의 약 20%를 지원 받은 것이다.

복지부는 “선정과정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하고, 뇌물로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된 사실이 밝혀지면 관련 법에 따라 지정 취소 등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스더·정종훈·한영익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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