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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철학(24)이시형 <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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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경성 환자들은「건강상태」를 지나치게 이상적인 걸로 상상하고 있다. 누웠다하면 코를 골고,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하늘을 날듯 가볍고, 쇳덩이를 삼켜도 거뜬히 소화되고, 종일 일해도 지칠 줄 모른다….
신경성 환자는 건강은 이래야 된다고 단정하고있다. 기가 찰 일은 자기도 아프기 전엔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회복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평생 병자일수밖에 없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놓고서야 세상 누구도 합격선에 들지 못한다. 하지만 신경성 환자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런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더욱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건강에의 지나친 이상화, 이게 이들의 법이다. 누구도 그럴 수는 없는데도 그런 것으로 알고있다. 또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건 거의 망상에 가까운 확신이다.
해서 이들은 작은 이상이라도 생기면 기겁하고 놀란다. 하찮은 것에도 마치 죽을병에나 걸린 것처럼 겁을 먹는다. 이게 이상적 건강논자의 지나친 욕심이 부른 불행이다.
건강에 대한 개념들이런선에서 규정한다면 이 사람은 아주 아프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신경성 척도가 높을수록 건강에의 이상척도도 비례해서 높아진다. 이래서야 어느 한 순간 건강이란 걸 느낄 수 없게 된다.
사노라면 아플 적도 있다. 아픈 데가 있어야 생기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아픈 데가 있어야 지금까지의 건강에 감사를 느낄 수도 있다. 아파야 그나마 남은 건강을 고맙게 여긴다.「고야」는 귓병을 앓았다. 급기야 귀가 멀어 신경질적인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성한 눈이 있는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눈이 건강한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할 적엔 건강의 고마움을 모른다. 하긴 건강이 뭐라는 개념조차 없고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어느 한곳이 아파야 비로소 남은 건강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슬기도 생긴다.「르누아르」도 말년에 심한 신경통을 앓았다. 드디어 손가락이 마비돼 붓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손에다 붕대를 감아 그 속에 붓을 끼워 작업을 계속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며 애처로와 하는 아내를 위로했다. 고통 속에서도 이 정도 아픈 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자신의 건강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 것이다.
신경성환자라면 자살이라도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상태로 일을 한다는건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인체는 완벽한 상태일 수 없다. 그만큼 정교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고급카메라일수록 고장이 잘 나는 거나 같은 이치다. 세상에 누구도 이상적인 건강을 지닐 수는 없다. 작은 내적·외적 반응에도·인체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미련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이상론도 금물이다. 그게 바로 병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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