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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과주말을] 유럽 네티즌 4명이 일으킨 소설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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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Q
루터 블리셋 지음, 이현경 옮김
새물결, 1000쪽, 1만9500원

저자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 루터 블리셋-. 198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카리브해 출신의 축구선수다. 단, 그는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20대 청년 네 명이 그의 이름을 '걍' 갖다 썼다. 특별한 이유? 없다. 시쳇말로 철수면 어떻고, 영희면 또 어떤가. 어차피 같은 사람이 아닌가.

단순해 보여도 여기엔 그럴 듯한 철학이 들어있다. '나는 우리다'라는 급진적 공동체주의가, 익명의 ID로 자기를 표출하는 인터넷 문화가 숨겨져 있다. 사이버 공동 창작이라는 디지털 문화의 한 단면도 드러낸다. 이들 '보이지 않는 젊은이 넷이 1994~99년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이 바로 'Q' 다.

'Q'는 유럽에서 대단했다. 기차에 무임승차하다 경찰에 잡힌 이탈리아 청년들이 앞다퉈 '루터 블리셋'을 자처할 정도였다. 배경은 16세기 초반 유럽. 로마 가톨릭에 맞섰던 루터의 종교개혁이 출발점이다. 사회변혁을 꿈꾸는 급진 개혁파 '나'와 기득권을 대변하는 카라파 추기경의 스파이 'Q'가 대립각을 이루고, 그 사이에 카라파 추기경이 개입하면서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이 빚어진다.

작은 사건 하나라도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거기에 오늘날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국제금융사기 등을 연상시킬 만큼 뛰어난 상상력을 덧붙인 '앙팡 테리블'의 글솜씨가 놀랍다. 1000쪽 책이 착착 넘어간다. 요즘 유행하는 '팩션'의 모범이자 고품격 정치 스릴러로 손색없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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