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음치불가] 이승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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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래방에 가서 한번쯤 멋지게 무드를 잡고 싶을 때-. 그럴 때 이승철의 노래는 단연 클릭 1순위다. 초콜릿이 혀에서 녹는 듯 감미롭게 속삭이다가도 고음역에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맑고 안정되게 구사하는 감성 창법의 일인자. 이승철만의 세련되게 다듬어진 목소리는 20여 년간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한 결실이다.

1985년 그룹 '부활'을 통해 음악계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의 창법은 파워를 싣고 격하게 뻗어나가는 헤비메탈 보이스에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당시 임재범이나 김종서의 그것이 더 특색 있고 강력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노래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세계적으로 헤비메탈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던 때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비롯한 곡들을 불렀고, 이후에는 솔(soul)색 짙은 창법으로 새롭게 팬에게 다가갔다.

이승철의 경우 고음에서 두성을 사용하는 감각이 특이하다. 게다가 두성이 중저음에서도 일정하게 나오는 게 특징. 그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수준의 비성을 구사해 참 맑은 소리를 낸다. 부드럽고 힘을 뺀 창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결국 테크닉적으로 볼 때 이승철처럼 되기 위해선 일단 흉성보다는 비성과 두성배음 연습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변성기가 지난 일반 남성이 두 옥타브 '미'부터 '솔'까지의 음역대를 무리 없이 구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음역대로 오르는 과정에서 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철의 경우 무리 없이 구사한다. 일단은 타고난 재능이다. 또 같은 음역에서 노래하더라도 다른 가수의 소리보다 좀 높은 음을 내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2옥타브 '라'를 내도 3옥타브 이상인 듯 들리는 것이다. 감성이 제대로 묻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들어 그는 바이브레이션을 자주 사용한다. 아마도 솔로로 전환한 뒤 빈 자리를 채울 기교가 필요했기 때문인 듯하다. 낮은 배음을 자주 섞어 과거에 비해 안정된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추구하는 장르가 바뀌다 보니 소리는 더욱 흑인풍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리는 갈수록 기름 지고 굵어진다. 과거에 비해 조금 비대해진 몸매도 현재와 같은 소리를 내는 데 유리할 수 있다. 결국 이승철만의 '느낌'이 있는 창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지금의 감성 창법을 완성한 셈이다.

하나 더. 그는 다른 가수보다 긴 호흡을 구사해 소리를 더욱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 적어도 30초 이상(또는 그보다 훨씬 길게) 한 음을 일정하게 낸다. 발음까지 정확하다. 이 정도면 단순히 소리를 입에서만 '갖고'있지 않고 마음대로 '즐기는' 단계라 이를 만하다.

이승철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쪽으로 스스로를 진화시킨 완벽한 사례다. 얼마 전의 미국 공연에 이어 곧 있을 일본 내 음반 발매도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조성진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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