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서 사라진 120억원…알고보니 희대의 직원낀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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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일러스트=강일구]

돈. [일러스트=강일구]

농협에 맡긴 120억원이 사라진 사건은 두 명의 공범과 농협 감사, 농협 지점장이 가담한 사기극으로 드러났다.

구미경찰서는 10일 ‘은행 지급보증서’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속여 120억원을 편취한 윤모(44)씨, 김모(47)씨와 이에 가담한 구미시 산동농협(단위농협) 장천지점 감사 이모(54)씨, 지점장 김모(54)씨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윤씨와 김씨는 개인투자자 이모씨에게 지난 11월 접근했다. 이들은 "백화점 상품권을 사고 팔면서 남는 수익을 챙기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는 농협에 돈을 넣으면 수수료와 이자 월 8%를 챙겨주겠다"며 이씨에게 다가갔다. 이씨는 이들의 말을 믿고 농협에 40억원을 예치했다. 대신 농협 지점장 김씨로부터 지급보증서를 받았다. 오는 6월 1일 원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증서였다.

경북경찰청. [연합뉴스]

경북경찰청. [연합뉴스]

윤씨 일당은 이씨에게 매월 수수료 8%를 줬고, 이들을 믿게 됐다. 이씨는 추가로 2월에 10억원, 3월에 20억원을 예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농협에 맡긴 70억원 중 이자 등의 명목으로 25억원만 회수했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또다른 피해자인 A업체가 경찰에 이들 일당을 신고하면서 이씨도 자신이 사기 사건의 피해자임을 알게 됐다.

부동산 임대업체인 A업체의 경우 지난 2월 50억원을 농협에 예치했다. A업체는 해외투자유치를 위해 신용을 보증해줄 지급보증서가 필요한 상태였다. 윤씨 일당은 A업체에 지급보증서를 써줄 은행이 있다며 접근했다. 지점장 김씨는 지급보증서를 임의로 작성해 A업체에 건넸다. 2달 뒤에 원금을 돌려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2달 뒤에도 돈을 돌려주지 않자 A업체는 지난달 23일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지점장과 농협 감사 이씨를 고소했다.

돈을 빼내간 윤씨는 이날 바로 구속됐다. 경찰은 윤씨 계좌를 추적하던 중 그를 도와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줄 은행을 물색한 김씨도 추가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지점장과 은행 감사가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대가로 농협에서 써줄 수 없는 지급보증서를 임의로 써주면서 범행에 가담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범행을 위해 농협 감사 이씨에게 접근했고 이씨를 통해 만난 지점장 김씨에게 “돈을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이자 10%를 주겠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점장 김씨는 “지점 실적 압박이 심해 하게됐다. 공범은 아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지점장 김씨가 2억원을 받아 개인채무변제 등에 사용한 정황을 포착해 윤씨 일당과 함께 그를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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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을 주도한 윤씨와 김씨는 아파트 임대료, 외제차구입에 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12억원을 받은 농협 감사 이씨도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에 돈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전체 금액을 어떻게 썼는지 함구하고 있다. 더 파악해봐야 수사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불법 지급보증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급보증 전 불법사금융신고센터나 금융감독원 등을 통해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미=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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