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논리가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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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반대로 굳게 닫혀 있던 중국 서북부의 유럽행 직선 하늘 길이 열린다. 우회 항로 대신 직항로를 이용해 시간을 단축하고 연료를 절감하자는 경제 논리가 중국 군부의 보안 논리를 누른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운항 시간이 30분가량 줄어들게 된다. 기름도 아낄 수 있어 연간 3000만 달러(약 300억원)의 비용 절감도 기대된다. 이뿐만 아니라 운항시간 단축에 따라 화물 운송 단가도 낮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럽을 오가는 승객과 화물이 급증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자 영공 개방 확대를 결정했다.

◆ 유럽행 직선 항로 개방=월스트리트 저널(WSJ) 아시아판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항공 당국이 13일부터 서북 지역의 유럽행 직선 항로를 개방한다고 10일 보도했다. 이번에 개방된 약 1500km의 새 항로를 이용하면 홍콩.상하이.마닐라 등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쓰촨성 청두~칭하이성~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지나 카자흐스탄 영내로 진입한 뒤 유럽으로 갈 수 있다.

기존 항로를 이용할 때는 청두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뒤 란저우~우루무치 상공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연료 사용에서 그만큼 경제적이지 못했다. 새 항로 개방으로 중국의 주요 항공사는 물론 에어프랑스.영국항공.캐세이퍼시픽.루프트한자 등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 중국 하늘 길 더 열릴까=IATA가 6년 전부터 서북 영공의 직선 항로 개방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그동안 묵살해왔다. IATA가 중국 서북부의 직선 항로 개방을 강하게 요구해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 유럽으로 오가는 항공 물류 수요가 급증했고 그에 따라 중국과 유럽 항공사들은 운항 편수를 크게 늘렸다. 고유가 상황에서 운항편수가 늘어나 비용 부담이 커지자 대안을 강구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IATA에 따르면 그동안 직선 항로 개방이 늦어진 주 이유는 중국 군부의 반대 때문이었다. 중국 군은 7대 군구(軍區)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항공기가 통과하는 청두와 란저우 군구 측이 군사 정보 유출 가능성을 들어 반대해 왔다. 중국은 이 일대에서 핵실험을 하곤 했으며,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강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도 란저우 군구 관할이다.

IATA에 따르면 중국은 전체 항로의 30%만 대외에 개방할 만큼 국제 항공 업계에서 폐쇄적인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서북 항로 개방을 계기로 국제 항공사들은 중국의 하늘 길이 더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ATA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의 데이비드 베런스 국장은 "항로 개방 문제를 놓고 요즘 중국 군부와 대화를 하고 있다"며 항로 신설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항로 개방 확대 가능성을 높인 주요인으로 치솟는 유가를 꼽고 있다. 석유 수출국이던 중국은 1994년부터 수입국으로 전락하면서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과 세계 주요 도시를 잇는 항로의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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