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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받고 홍콩 간 샤오미 … 레이쥔은 ‘대륙의 갑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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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가 홍콩 증시에 상장을 추진한다. 기업공개가 이뤄지면 레이쥔 샤오미 회장의 자산은 778억 달러에 달해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누르고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될 전망이다. [중앙포토]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가 홍콩 증시에 상장을 추진한다. 기업공개가 이뤄지면 레이쥔 샤오미 회장의 자산은 778억 달러에 달해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누르고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될 전망이다. [중앙포토]

중국의 최대 부호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일 마윈의 자산은 469억 달러에 이른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마윈 회장이 조만간 1위 자리를 내놓을 듯하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小米·좁쌀)의 레이쥔(雷軍) 회장이다.

중국 IT업체 기업공개 신청 #뉴욕에 알리바바 뺏긴 홍콩 증시 #30년 만에 규정 바꿔 샤오미 유치 #상장 뒤 기업가치 1000억 달러 예상 #최대 주주 레이쥔, 자산 778억 달러 #469억 달러 마윈 꺾고 부자1등 될 듯

레이쥔이 돈방석에 오르게 된 것은 기업공개(IPO) 덕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샤오미가 홍콩증권거래소에 IPO 신청서를 냈다고 3일 보도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샤오미의 기업가치는 1000억 달러(10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샤오미는 이번 IPO로 100억 달러(약11조원)를 조달할 계획이다. 이는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 이후 세계 최대 규모다. 좁쌀이 대형 홈런을 친 셈이다.

SCMP에 따르면 레이쥔은 샤오미의 지분 77.8%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의 예상대로 샤오미의 기업가치가 1000억 달러가 되면 레이쥔의 지분가치는 778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레이쥔이 마윈을 앞서 중국 최대 부자가 된다. 레이쥔이 우상으로 여겼던 중국 2위 부자 마화텅(馬化騰) 톈센트 그룹 회장(396억 달러)도 앞지르게 된다.

샤오미의 나인봇 미니.

샤오미의 나인봇 미니.

알리바바 이후 IPO 시장의 ‘대어’인 샤오미를 잡으려는 투자은행과 각국 증권거래소 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좁쌀을 잡은 곳은 홍콩이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샤오미를 유치하기 위해 30년 만에 상장 규정을 바꿔 차등의결권을 허용했다. 사상 최대의 IPO였던 알리바바 상장을 뉴욕에 빼앗긴 결정적 이유가 차등의결권이었다. 4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도까지 바꾼 것이다.

차등의결권은 주당 1개의 의결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주주와 기업 경영진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선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꼽힌다. 미국은 적대적 M&A가 만연했던 1980년대 이후 기업의 요구로 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그 덕에 구글과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뉴욕증시를 택했다.

레이쥔의 운명을 바꾼 것은 우한(武漢)대 컴퓨터공학과에 학생이던 시절 만난 한 권의 책이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등을 다룬 책을 읽은 뒤 2년 만에 대학을 마치고 92년 소프트웨어 회사이던 킹소프트에 취직해 입사 8년 만에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

2007년 등장한 애플의 아이폰은 다시 한번 레이쥔의 인생을 뒤흔든다. 모바일 세상에 대한 기대를 안고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2008년 엔젤투자자로 삶을 시작한 뒤 2010년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 샤오미를 세웠다.

1년 뒤 레이쥔의 샤오미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2011년 8월 내놓은 샤오미의 첫 번째 스마트폰 ‘Mi-1’가 출시 30시간 만에 예약 매진돼서다. 아이폰의 ‘카피캣(copycat·인기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 만든 제품)’이란 비판에도 1999위안이라는 파격적인 저가 전략이 지갑이 얇은 젊은 층을 파고들었다. 그에게 ‘중국의 스티브 잡스’ 혹은 ‘레이 잡스’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Mi-1 출시 설명회 무대에 잡스처럼 청바지에 짙은 색 셔츠를 입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샤오미가 성공을 거둔 것은 초기의 혁신적인 사업 모델 덕이다. 초창기 샤오미는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에서만 제품을 팔았다. 매출의 1%만 마케팅 비용에 썼다. 대신 입소문을 통해 판매를 늘려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나 위챗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구전 마케팅의 핵심은 ‘샤오미의 팬’으로 불리는 ‘미펀(米紛)’이다. 미펀은 자발적으로 샤오미의 영업맨을 자처했다. 여기에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가성비’를 인정받으며 샤오미는 ‘대륙의 실수’로 불리기 시작했다.

위기도 있었다. 저가의 카피캣 전략으로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화웨이(華爲)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내주기도했다. 특허 관련 소송에 얽히면서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등 1년 만에 전열을 정비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인도시장에서는 삼성전자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의 약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1분기에는 2700만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출하해 전 세계 시장점유율 7.5%를 차지하며 삼성전자와 애플, 화웨이에 이어 업계 4위로 도약했다. 샤오미의 지난해 매출은 1146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67%나 늘었다. 영업이익(122억 위안)도 전년 대비 3배 넘게 증가했다.

레이쥔은 “바람 목에 서 있으면 돼지도 날 수 있다(只要站在風口, 猪也能飛起來)”고 강조한다. 시류를 읽고 태풍(기회)의 힘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좁쌀을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든 그가 IPO를 통해 다시 한번 돼지를 날아오르게 할 수 있을까. 레이쥔의 또 다른 꿈이 시작되고 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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