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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씁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요즘 구미에선 2권의부기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있다. 그하나가 올해78세의 미국 영화감독 「엘리아·카잔」의 자서전『어떤 인생』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거』, 『워터 프론트』,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등 사회성 짙은 영화로 잘알려진 「카잔」은 『정직하지 않은것은 가치가 없으며 이제 나는 사람들이 뭐라하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정신아래 이 자서전을 썼다면서 정열과 분노의 예술인생을 솔직하게 회고하고 있다.
희랍계 터키 이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잔」은 이른바 WASP (백인·앵글로색슨·신돈도)들의 따돌림에 대한 반발로 여성을 유혹하여 파멸시키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25세때(1934년)는 미국공화당에 가입, 18개월동안 당원으로 활동했다.
미국 지식인 사회에 큰충격을 준 「카잔」의 무책임한 기행은 1952년에 일어났다. 「맥카시」의원이 주동이 된 하원 비미국행동 조사위원회에 소환돼 11명의 연예계 인사들을 공산당원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정직하게 썼다는 자서전에서조차「카잔」은 이때의 행동을 얼버무리고 있다. 『이미 다 알려진 사람들을 지목했을뿐』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나 그가 지목한 인사의 절반은 그때까지는 공산당 가입 경력이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전기작가들은 비판하고 있다.
맥카시위원회는 대어를 낚았으나 미국 지식인들의 속은 쓰라렸다. 희극배우 「채플린」같은 천재가 겪은 수난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카잔」의 자서전이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을 그가 어떻게 고백할까를 사람들이 기다렸기 때문이다.
구미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또한권의 전기는 소련의전사편찬실장 「드미트리·볼코고노프」장군이 쓴 「스탈린」부기『승리와 비극』이다. 이책은 아직 발행되지도 않았는데(89년 출간예정) 벌써부터 언론계와 역사학계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것은 이 「스탈린」전기가 최초로 소련인의 손으로 씌어진「스탈린」평전이라는 점과 기록보관소에 비장돼 있던 수천점의 자료를「고르바초프」의 명령에 따라 자유롭게 인용했다는점 때문이다.
어떤 내용을 담느냐는 기자들의 등쌀때문에 소련당국은 이 부기의 발췌기사를 지난6월말 프라우다지에 게재했다. 거기에는 1930년대 피의 대숙청 대목이 나온다. 군사법정에 선 피고에게 재판장은 『당신은 유죄를 인정하는가』라고 묻지만 대답이 『예』건 『아니오』건 관계없이 처형됐다.
서방학자 가운데는 대숙청 당시의 처형자수를 알기위해 숙청전후의 인구통계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궁금증에 대해「볼코고노프」는『책에 나올것』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승리와 비극』이라는 책제목에 대해 그는『한개인의 승리가 나라 전체에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가를 조명하기 위해』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한다.
자서전을 포함한 부기문학이 가끔 역사책과 혼동되는 것은 이를 통해 숨겨진, 또는 모르던 역사적 진실이 새롭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특히 자서전은 시대와 제도에 작용한 개인의 역할 때문에 드러매틱 하기도 하다.
우리는 생존하는 3명의 전직대통령을 갖고있고 적지않은 숫자의 전총리, 국회의장, 대법 원장도 있다. 격동기마다 큰 역할을 한 지도자들이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 섭섭하다. 그것이 회상록이건 참회록이건 간에 말이다.
김성호(중앙일보출판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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