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인수배경|5·16군사혁명 비협조가 화근|김지태씨 거사자금 거절 미움받아|전사주측, 소유권반환소송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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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5일째 파업을 벌이고있는 부산일보노조측 공격의 화살이 부산일보유지재단인 「정수강학회」로 돌려지면서 이 재단이 부산일보를 인수하게된 배경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조측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5·16군사혁명이후 부산일보의 운영권을 장악하게된 배경에는 언론지배를 위한 권력층의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더욱 그렇다.
14일 노조파업현장을 방문한 김영삼민주당총재도『부산일보파업은 5공화국이 저지른 언론비리를 척결하려는 역사적 운동』이라고 평하고 『국회문공위에서 공청회를 갖고 부산일보소유권이전과정의 진상등을 규명하겠다』고 밝혀 부산일보파업사태는 정치적 이슈로까지 비화될 전망이다.
더구나 전사주 김지태씨의 유가족들도 부산일보소유권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부산일보노사분규는 소유권분쟁으로까지 비화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있다.
5·16군사정부가 삼화고무회장이었던 김지태씨 소유의 부산일보를 강제인수한 것은 5·16군사혁명직후인 62년 5월. 개인소유재산인 부산일보를 강제인수한 것은 박정배소장이 군사쿠데타준비과정에서 김씨가 비협조적 태도를 보인점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것이 당시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박소장이 김씨와 인연을 맺게된것은 4·19직후 송요찬참모총장을 부정선거관련자로 규정, 퇴임을 요구했다가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좌천되면서 부터였다.
이때 박소장은 대구사범동창으로 부산일보편집국장이던 황룡주씨와 가깝게 지내면서 사주 김지태씨와도 알게됐다.
당시 김씨는 삼화고무·조선방직 사장으로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등 언론3사를 운영하던 부산재계의 실력자.
이후 대구2군사령부로 옮겨 혁명을 준비하고 있던 박장군은 5·16혁명 1개월전 황국장을 통해 김씨에게 혁명자금지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것이 김씨에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5·16당시 김씨는 부인과 함께 해외여행도중 홍콩에서 혁명소식을 듣고 급거귀국했다. 이때 부인이 끼고들어온 다이아먼드반지 1개가 혁명정부에 발목이 잡히는 화근이됐다. 김씨는보석밀수혐의로 구속기소돼 7년구형을 받았다. 혁명정부는 이를 미끼로 김씨에게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헌납각서를 쓰도록 강요, 김씨가 이에 응하자 병보석으로 풀어줬다.
혁명정부는 62년5월 부산일보를 비롯한 김씨소유8개 언론사를 인수, 여기에서 나온 재원으로 5·16장학회를 발족시키고 이장학회가 부산일보를 운영해나갔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 김종신씨의 증언을 토대로 쓴 『언론과 정치』에도 기록돼있다.
「신문사인수과정진상규명」요구로까지 비화된 부산일보의 전면파업사태는 재단측의 진실규명을 위한 성의있는 태도와 과감한 양보없이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부산=조종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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