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3세 참여 '진보 교육감' 단일화 경선 논란…"올바른 변화" VS "너무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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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의 교육감 후보들은 하나같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공약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데, 왜 진보진영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생각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을까?”(김윤송·15)

“학생 인권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교권 침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것에 후보자가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학교가 학생인권과 교권이 공존하는 곳이란 사실만이라도 잘 알리는 후보가 있다면 투표해도 괜찮을 것 같아.”(이은선·18)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설치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천막 농성장 안. 다섯 명의 청소년이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선거연령 하향 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40일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년 활동가다.

이날 청소년들은 지난 2일 시작해 5일까지 진행되는 서울교육감 진보진영 단일후보 경선 투표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봤다. 해당 후보는 이성대 전교조 서울지부 대외협력실장과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이다. 이번 진보진영 서울교육감 단일후보 경선 투표에는 만 13세 청소년부터 참여할 수 있다. 이곳에서 천막 농성 중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유니온, 청소년인권연대추진단 등에 소속된 활동가들도 이번 시민경선단 투표에 참여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선거 연령 하향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년들. 이들은 2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는 진보진영 서울교육감 단일화 경선에 선거인단으로 참여하기 위해, 천막 농성장에 모여 후보자 간 공약과 정책에 대해 자주 논의한다.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선거 연령 하향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년들. 이들은 2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는 진보진영 서울교육감 단일화 경선에 선거인단으로 참여하기 위해, 천막 농성장에 모여 후보자 간 공약과 정책에 대해 자주 논의한다. [중앙포토]

청소년들의 주요 관심사는 ‘학생 인권’이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서울시교육감에게 제안하는 학생인권 정책 제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그 결과를 진보진영 예비후보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수시로 농성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후보 간 공약을 비교해보고, 어떤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왔다.

이날 농성장을 찾은 송하민(19)씨는 “진보진영의 두 후보가 모두 공약에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송군은 “생계를 위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청소년이 의외로 많다”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공약이나 정책적 고민이 없는 걸 보고, 교육감 후보들이 ‘청소년=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식의 단편적 시각을 가진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가 장은채(20)씨는 “어떤 공약이 좋은지, 무슨 기준으로 투표할지에 대한 의견은 자주 나누지만, 누구를 찍을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면서 “투표는 단체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촛불교육감 후보 경선 토론에서 조희연 예비후보(왼쪽)와 이성대 예비후보가 토론하고 있다. 가운데는 사회자인 심성보 사회적교육위원회 상임대표.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촛불교육감 후보 경선 토론에서 조희연 예비후보(왼쪽)와 이성대 예비후보가 토론하고 있다. 가운데는 사회자인 심성보 사회적교육위원회 상임대표. [연합뉴스]

경선 참여 선거인 1만여 명 중 13~18세 1000여 명 

진보진영의 서울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에는 이번에 만 13세부터 참여할 수 있다.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기구인 ‘2018 촛불 교육감 추진 위원회(촛불추진위)’의 결정에 따라서다. 진보진영 교육감후보 단일화는 2~5일 시민경선단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7대 3으로 합산하고 현직이 아닌 후보에게 득표율의 10%를 가산하는 방식으로 경선이 진행된다.
촛불추진위는 서울 지역에 한해 시민경선단에 만 13세 청소년부터 1인 1표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경선단은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을 받은 뒤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온라인 투표(2~3일)에 참여하거나, 서울시의회 제2 대회의실로 방문해 직접 투표(4~5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3일 촛불추진위에 따르면 시민 경선에 참여할 최종 선거인은 1만7113명으로 확정됐다. 이 가운데 만 13~18세 청소년은 1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안영신 촛불추진위 대변인은 “교육감 정책의 직접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선거에 영향력을 갖고 대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번 단일화 경선에서 만 13세 청소년부터 투표권을 부여했다”면서 “이번 경선 투표를 계기로 실제 선거에서도 선거권 연령이 낮춰지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선거권 연령 하향이 몇 차례 논의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한 34개 나라가 만 18세 혹은 만 16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의 선거권 연령은 만 19세부터다.

진보진영 단일화 경선에 만 13세부터 참여를 허용한 것을 두고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의 김재철 대변인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해 정치나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만 13세 청소년을 특정 진영의 후보자를 선정하는 경선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시민교육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이 민주 정치에 참여해 의사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만 13세부터 경선에 참여시킨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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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6~17년 촛불집회와 이로 인한 정권교체를 경험한 10대들의 정신적 성숙도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과거 청소년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진영 교육감 단일화 경선에서 만13세에게 경선 투표권을 준 것은 굉장히 실험적인 결단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청소년들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숙도를 밀도 있게 함양할 수 있는 학습 기회가 될 것”이라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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