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에 「거부권한파」|잇단 대책회의로 분주한 각당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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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국정감사· 조사법 및 증언·감정법에 대한 거부권행사로 인해 정국은 다시 거부권파동에 휩쓸리고 있다.
민정당이 거부권 타당성을 선전하는 대국민 대량홍보 작전에 들어갔고 야당은 공동항의전선을 모색해 정가엔 한동안 찬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민정당은 국정감사·조사법과 증언·감정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을 기정사실화하고 이 법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국민에게 피부에 와 닿게 알리는 방안 등 주로 설득 훙보면에 치중해 왔다.
민정당은 거부권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정부측에 14일의 국무회의 내용을 공개토록 제안.
민정당은 거부권이 행사된 직후 야권이 재야와 연계하여 장외규탄대회를 개최하거나, 다음 임시국회에 일시적으로 등원 거부하거나, 국회에서 농성을 하리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
14일 아침 당고문과 당직자들이 참석한 확대당직자회의에서도 거부권행사를 둘러싼 대책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대통령이 국회에 재심의를 요청하는 것은 정상적인 법절차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이 문제를 장외 정치적 수단으로 정치문제화 하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비난하고 『야당의 다수결에 우리 당이 순순히 응했던 것처럼 야당도 재심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촉구.
당 실무 차원에서는 국민여론이 구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야당측의 주장이 먹혀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필요하다면 기자회견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건의도 했었다.
민정당은 당차원에서의 홍보전략 일환으로 13일 오후 국무회의에서 두 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토록 건의한 의결이 있은 직후 즉각 민정당보 호외 30만부를 제작하여 서울시내 중심가 와 일부에 가두배포하고 당조직을 통해 전국에 배달.
일반신문크기의 2면으로 된 이 호외에는『당리당략을 앞세운 위헌입법』이라는 제목 하에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국정감사·조사법과 증언·감정법의 부당성을 고발하며 각 법이 부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2면에는 이진우의원이 이 법의국회 통과 때 반대토론했던 내용을 전재하고 국무회의의 결의내용을 전문으로 게재.
○…민정당내에서는 거부권행사가 기정사실로 간주되어 왔으나 일부에서는 거부권 행사 때 국민이 받을 충격을 우려하여 이거부권행사에 신중해야한다는 의견들이 표출.
11일의 중집회의에서도 이종찬정무장관·정순덕의원등은『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여야가 협상을 시작하여 수정안을 만들어 낸다면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야간의 대화를 촉구했다.
당 일부의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야당과 행정부 일각에서는 『혹시 거부권행사가 늦어질지도 모른다』『정부가 선별적으로 논리가 당당한 국정감사·조사법은 거부권을 행사하여 국회에 반송하고 구인제가 들어있는 증언· 감정법은 국회안대로 받아들일 것이다』라는 소문도 퍼졌으나 결국 당초의 거부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평민당은 14일 정부의 거부권행사 소식이 전해지자 정례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야3당의 협력, 범국민항의운동을 전개키로 하는 등 강경 대응책을 수립했으나 당초 독자적으로 하겠다던 범국민항의운동은『야3당이 협력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전개한다』는 선으로 선회.
평민당은 이번 거부권 행사의 주된 이유가 된 구인제의 관찰보다는 노태우 정권이 5공화국의 상속자임을 부각, 중장기적 안목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자료 축적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는 눈치.
특히 당직자들의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이 구인제문제의 법률적 당위성보다는 특정인을 비호하려는 저의라는 식으로 일관.
회의에서 김대중총재는 『한마디로 설마 했는데 실망을 금할 길 없다』면서 『국민의사를 무시하고 특정인을 비호하는 듯한 거부권 행사는 참으로 유감이다』고 피력.
이에 이상수대변이 『야3당총재가 협력해 만든 법률이니 3자가 다시 모여 대응책을 논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자 김총재는 『대학로 집회 때 내가 김영우총재한테 그 같은 제의를 했더니 김총재가 좀더 두고보자고 했다』며 이대변인의 제의를 채택.
평민당은 그 동안 거부권행사에 대비해 다단계 대응작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실무협상대표인 김원기 총무는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여야협상을 다시 할 수도 있고 야3당이 따로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등 여러 방안이 있다』고 말해 타협에 임할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하는 등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
따라서 평민당은 정부의 이번 거부권행사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이 민의를 수렴하겠다는 공약을 저버렸다는 점을 충분히 부각시킨 뒤 적당한 모양을 갖춰 협상에는 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영삼 민주당총재는 부산일보 파업사태가 조기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13일 밤 급거「고향」으로 내려와 현장파악을 마친 뒤 14일 아침 숙소인 동양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초강경어휘를 써가며 비판.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당초 부산일보에 대한 언급만 하려다가 거부권 행사이후의 정국주도를 겨냥, 정치적 공세를 최고조로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추가 강조했으며 즉각적인 야3당총재회담 추진계획도 공개.
이 같은 방침은 김 총재와 그를 수행한 부산출신의 이기택부총재· 최형우총무· 신상우국회보사의원장·박관용국회통일특위위원장·김정길부총무등이 참석한 전략회의에서 나온 것인데 거부권문제와 당운을 걸고 추진하는 5공화국 비리조사를 연결시켜 정부·여당에 대해선 강력한 선제공세, 대국민선전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
김 총재는 『이시점에서 노태우 정권이 5공화국의 부정부패를 청산할 것인가, 계승할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면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고 또다시 독재적 부정부패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 설 때 국민의 준엄한 문책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
그는『노대통령 자신이 정말 깊이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하고 거부권행사에 대해 「가증할 음모」「비겁한 행위」「엄청난 재앙이 올 것」등 강경용어를 총동원해 맹타.
김총재는 『위헌인지 아닌지는 헌법재판소의 고유권한』이라고 꼬집고 『국회심의 할 때는 민정당이 정치훙정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이제 와서 자신의 비위에 안 맞는다고 위헌 운운하는 것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규탄.
○…공화당도 14일 정부의 거부방침 결정에 따라 긴급 간부회의를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
김 종필총재는 『국회에서 통과되자마자 협상운운하고 또 야당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졸렬한 짓』이라며 대여 협상은 당분간 하지 않고 야3당간의 협의로 공동대처 할 것임을 시사.
김 총재는 『2개법안은 국민의 뜻에 따라 오랜 고심 끝에 통과시킨 것이며 구인제조항도 판사의 판단에 따르는 등 민주적인 것』이라며 『협상하려면 가결되기 전에 해야지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협상운운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짓』이라고 비난.
공화당은 야3당 공동으로 강경 대처키로 당론을 확정했으나 모든 정치를 국회로 수렴한다는 기본방침에 따라 양외 투쟁은 배제하되 증인출석을 보장할 특례법마련 등의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중. <문창극·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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