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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표준시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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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2016년 1월 6일 오전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감지된 직후 조선중앙TV가 낮 12시 중대 발표를 예고했다. 긴급 속보를 내보내던 남쪽의 일부 방송사 관계자들은 잠깐 혼선을 겪었다. 시간이 됐는데도 발표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해방 70돌인 전년도 8월 15일부터 서울 표준시에서 30분 늦어진 ‘주체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다행히 방송사고는 없었지만 ‘시차’가 주는 불편함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스마트폰 표시 시간이 자동으로 바뀌는 바람에 취재진 사이에서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표준시는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 행위다. 1912년부터 5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던 중국은 1949년 신중국 수립 후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베이징시간으로 통일했다. 동서 5200㎞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표준시는 하나이다 보니 서쪽 내륙의 생활시간 감각은 영 부자연스럽다.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우루무치에서는 겨울은 아침 10시에도 어둑하고 여름은 밤 10시에도 훤하다. 소련은 1930년 6월 11개로 나눠진 영토 내 모든 표준시를 일괄적으로 1시간 당겼으나 소련 해체 후 대부분의 독립국가들은 그 전 시간대로 돌아갔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한 직후 동유럽에 맞춰져 있던 이 지역 표준시를 두 시간이나 조정해 모스크바에 통일시켰다.

북한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며 표준시를 30분 늦춘 것이 근거가 없지는 않다. 1908년 대한제국이 서양식 시간대를 도입할 때는 지금의 북한 표준시처럼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잡았다. 서울 광화문의 경도가 동경 126도59분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국권 침탈 후 일제는 조선반도의 표준 자오선을 도쿄와 같은 동경 135도로 바꿨다. 1954년 우리 표준시는 대한제국 시절로 잠깐 돌아가기도 했으나 박정희 집권 후 다시 도쿄 표준시에 맞췄다. 국제사회에서 30분 단위의 표준시가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표준시 통일’이 합의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의집 대기실에 걸린 서울과 평양 두 개의 시계를 보고 제안했다고 한다. 남북 간 갈라진 시간을 다시 합친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한편에서는 이처럼 막대한 비용과 불편이 따르는 일을 지도자 한 명이 즉석에서 결정하는 모양새가 놀랍다. 즉석 결정처럼 연출됐지만 정치적 함의는 이미 계산됐을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레 방향을 틀어 흘러가는 한반도의 시간 앞에서 현기증마저 들 지경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