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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거리 고향, 60년째 못가는 신세..."딱 한 번만 가봤으면"

중앙일보

입력

지광식 옹이 자신이 운영하는 교동이발관 앞에서 환하고 웃고 있다. 임명수 기자

지광식 옹이 자신이 운영하는 교동이발관 앞에서 환하고 웃고 있다. 임명수 기자

“최근 몇 년의 기억은 안 나도 어릴 적 고향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고향을 불과 배로 5분 거리에 두고 60년 넘게 가지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하는 지광식(80)옹이 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26일 지 옹이 운영하는 인천시 강화군 교동 ‘교동이발관’에서 만났다.

60년 넘도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지광식 옹

그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잘 끝나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고향 땅을 밟았으면 하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환하게 웃었다. 지 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예전의 두 차례와 사뭇 다르다”며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우리 땅을 밟는다는 점에서 정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완전한 통일이 쉽겠냐”며 “이번 대화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돼 우리 같은 실향민이 고향 땅을 한번 밟았으면 한다. 더도 말고 한 번 만 밟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향에 가면 그때 함께 나오지 못한 친척들을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피난 내려온 이후 60년 넘게 고향만 바라보며 지낸다는 지광식 옹. 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잘 치러져 고향 땅을 한 번 밟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피난 내려온 이후 60년 넘게 고향만 바라보며 지낸다는 지광식 옹. 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잘 치러져 고향 땅을 한 번 밟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남북정상회담 성공 기원, 고향 땅 밟는 게 소원 

지 옹은 “팔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고향을 코앞에 두고 가지 못하는 심정은 그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고향 주소를 기억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호동면 남당리 장수동’”이라고 또박또박 기억해 냈다. 그는 지금도 종이에 고향 집 약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집 앞에 아카시아가 울창해 늦봄이면 아카시아 향으로 뒤덮여 너무도 좋았다고 했다.

그가 고향을 떠나온 것은 1957년 8월. 전쟁이 끝난 후 감시망이 상대적으로 소홀한 때였다. 두 차례 탈출 시도만이다. 첫 번째 시도는 1956년 7월이었다. 남쪽으로 먼저 갔던 아버지가 배를 몰고 돌아왔다. 지 옹이 12살 때다. 어머니와 4명의 동생, 지역 주민 등 20여 명이 배를 타고 출발했다. 하지만 10여 분 뒤 옆쪽에서 갑자기 배 한 척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지 옹의 가족들은 배를 황급히 돌렸다.

강화 평화전망대에 부착된 북한지명. 임명수 기자

강화 평화전망대에 부착된 북한지명. 임명수 기자

1957년 8월 가족과 북한 고향 떠나와 

지 옹은 “당시 그쪽 배도 남쪽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는데 북한군인 줄 알고 서로 놀라 배를 돌렸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탈출은 이후 1년여 만인 57년 8월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교동에 정착한 지 옹은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18세 때 이웃 아저씨의 제안으로 이발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이발 기술을 배워 지금껏 살아왔다.

이발 기술 배워 가족 생계 책임 

그는 “당시 이발소가 3곳이 있었는데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동에 남았는데 그 희망이 사라져 모두 인천 등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고향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게 육지로 나갈 수 있겠느냐”며 “매년 초와 명절 때면 망원경을 들고 가 고향을 쳐다보며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강화 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땅. 해무때문에 선명하지가 않다. 임명수 기자

강화 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땅. 해무때문에 선명하지가 않다. 임명수 기자

그리움에 나날을 보낸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7~8년 전 북한 측이 지 옹이 살던 집과 아카시아를 모두 없애고 그곳에 공장을 세웠기 때문이다.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고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 옹은 “늘 그렇듯이 망원경을 들고 가 봤는데 갑자기 집과 울창한 나무숲이 사라져 깜짝 놀랐다”며 “집이 허물어지고 나니 갈 수 있는 곳이 영원히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고향 땅을 밟아봤으면 좋겠다”며 “남북정상회담이 정말 성공적으로 잘 치러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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