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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크로’ 판매한 프로그래머 ‘무죄’ 판결…“댓글 조작 심각한데 법은 미비”

중앙일보

입력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동원(48)씨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포한 개발자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매크로에 대해 재판부가 법에 금지된 ‘악성 프로그램’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법원 “매크로로 인한 과부하, 심각한 장애라 보기 어려워”

'포털에 이미지, 댓글 등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3억원의 수익을 올린 프로그래머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포털에 이미지, 댓글 등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3억원의 수익을 올린 프로그래머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최성길)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37)씨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0년 8월~2013년 10월 온라인으로 자신이 개발한 매크로 1만1774개를 팔아 약 3억원을 챙겼다. 구매자들은 매크로 포털사이트에 광고성 쪽지를 대량 발송하거나 댓글을 무한 등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포털 서버에는 통상의 최대 500배 부하가 발생했다고 한다. 1심은 A씨가 ‘악성 프로그램’을 유포했다고 보고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매크로가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봤다. 매크로로 인한 피해가 ‘해킹’ ‘디도스(DDoS)’ 공격처럼 시스템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정도여야 하는데, 그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빠른 속도로 기능을 반복 수행했을 뿐, 서버가 다운되는 등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지 않아 포털 운용이 방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매크로로 ‘댓글 조작’도 가능한데…처벌 규정 미비”

'드루킹' 김동원씨는 네이버 기사에 달린 댓글 공감수를 조작해 네이버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드루킹' 김동원씨는 네이버 기사에 달린 댓글 공감수를 조작해 네이버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문가들은 매크로가 ‘댓글 조작’ 등에 이용될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데 비해 관련 법률이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보통신망법법은 ‘서비스 방해’의 기준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재판에서 종종 법리 다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원 임종인 교수도 “사법부가 매크로의 사회적인 해악보다 기술적인 피해만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피의자들도 이 사건의 A씨와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김씨의 핵심 공범인 ‘서유기’ 박모(30ㆍ구속)씨는 지난 20일 열린 영장심사에서 “매크로 사용만으로 컴퓨터 시스템에 장애를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으며, 사용자의 의사 표현에 보조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욱 변호사는 “정보통신망법으로는 매크로를 처벌하기가 마땅치 않다 보니 보통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드루킹 김씨 역시 네이버의 정상적인 댓글 순위 선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김씨에게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매크로 관련 사건의 경우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 김 변호사는 “업무방해죄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이지만, 매크로 관련 사건은 통상 약식기소에 벌금형이 많다”고 말했다. 서정욱 변호사도 “드루킹이 정당의 후보자를 좌우하는 경선·대선 관련 댓글에도 개입한 만큼 단순히 한 포털의 업무를 방해한 수준 이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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