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드루킹 공범 “네이버, 댓글 조작 방조 … 1인당 아이디 무한정 쓸 수 있게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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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을 주도한 김동원(49·필명 ‘드루킹’)씨의 측근 박모(30·필명 ‘서유기’)씨가 최근 “네이버가 댓글 여론 조작을 방조한 측면도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지난 20일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에서다. 박씨는 이번 댓글 조작 사건에 사용된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를 구해 김씨에게 전달한 인물로, 이날 영장심사 후 네이버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돼 구속됐다.

사무실서 나온 휴대폰 170개 #대당 ID 3개로 댓글 10개씩 달면 #5000개 넘게 올릴 수 있어

박씨가 낸 의견서에 따르면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들이 사용한 매크로 프로그램은 첫 번째 아이디에 로그인하고 특정 댓글에 ‘공감’을 클릭하면 두 번째 아이디부터는 자동으로 공감이 클릭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지난 1월 경공모 회원들로부터 건네받은 아이디 600여 개를 사용해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의 공감 수를 끌어올렸다.

박씨 측은 의견서에서 “네이버가 회원들에게 1인당 아이디를 무한정 보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댓글 공감 클릭에 부당하게 개입할 여지를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는 실명 인증을 거치지 않고 한 개의 휴대전화당 아이디를 최대 3개씩 만들 수 있게 한다. 휴대전화 여러 대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이디를 수십~수백 개씩 보유해 공감 수를 무한대로 클릭할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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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네이버가 매크로의 폐해를 알고도 방치하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과거부터 암암리에 성행했던 매크로를 네이버가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매크로 조작은 빅데이터 기법을 동원하면 쉽게 잡아낼 수 있다”며 “이걸 방치한 건 댓글 전쟁을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네이버의 댓글 조작 방지 기능은 아이피(IP) 주소를 바꾸는 방법 등으로 뚫린다. IP(Internet Protocol)란 컴퓨터 등 기기에 부여된 고유 주소로, 네이버는 하나의 IP에서 지나치게 반복적인 작업이 탐지되면 해당 IP를 차단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문제는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를 켰다가 끄는 것만으로도 IP가 바뀐다는 사실”이라며 “IP와 매크로만 잘 결합하면 댓글 수천 개를 순식간에 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드루킹의 경우 파주 사무실에서 발견된 휴대폰 170여 대를 이용해 아이디를 수백 개 생성한 다음,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를 이용해 IP를 지속적으로 바꾼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IT 전문가 박모(53)씨는 “모바일로 접속할 경우 변동 IP가 생성된다. 이때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해 댓글을 달면 IP도 달라질 수 있다”며 “드루킹 일당처럼 휴대전화 170여 대를 이용한다면 한 대당 3개의 아이디로 댓글을 10개씩만 달아도 50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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