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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 중단” 이틀 뒤 대북 확성기 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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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방부가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국방부는 “2018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오늘(23일) 0시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2016년 재개, 2년3개월 만에 중단 #군 당국자 “북한도 확성기 끄는 중”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로 재개한 지 2년3개월 만에 다시 중단됐다.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은 이날 “북한이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먼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 한국이 호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국군심리전단이 최전방 지역에서 40대의 대북 확성기를 가동해 내보내고 있다. 전방 10~20㎞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고출력 방송이다. 담화·뉴스·드라마·음악 등 네 가지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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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북한 내부에선 들을 수 없는 뉴스가 핵심이다. 지난해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형인 김정남 독살 사건과 지난해 11월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사건도 대북 확성기를 통해 전달됐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에 대한 심리전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도 이날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듯한 움직임이 관측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상당 지역에서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들리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북한은 최전선 일대 40여 곳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해왔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 측 조치에 호응해 단계적으로 확성기 방송을 끄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북 가장 아파하는 확성기 … “너무 큰 것 양보” 비판도

남북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경기도 파주시 철책에 기동형 확성기 차량이 운용을 멈춘 채 서 있다. 국방부는 이날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경기도 파주시 철책에 기동형 확성기 차량이 운용을 멈춘 채 서 있다. 국방부는 이날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 구상을 통해 “정전협정 64주년인 27일을 기해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하자”고 북한에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북한에 제시할 카드로 검토됐다.

지난 2월에는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자유한국당)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모두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수위를 크게 낮춘 대신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의 남북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상세히 전달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북한의 선언적 내용에 그친 평화 공세에 한국이 군사적 역량을 해칠 수 있는 조치를 너무 쉽게 내주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실체가 불분명한 핵실험 중단 선언에 대한 대응 조치로는 너무 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중단과 재개 반복의 55년 역사=대북 확성기 방송은 서해 부근 휴전선 일대에서 1963년 5월 1일 최초로 실시됐다. 그러나 7·4 공동성명에 따라 72년 11월 최초로 중단됐다.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80년 9월 남북은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국방부는 “당시 북한 측이 먼저 방송해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확성기 방송은 전면 중단됐다. 2004년 6·4 합의 후에는 대북 확성기를 최전선에서 아예 철수했다.

그러다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조치로 확성기 시설이 최전선에 재설치됐다. 그러나 방송은 5년 뒤인 2015년 재개됐다. 그해 8월 10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맞불 성격이었다. 북한은 이때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두 차례의 포격 도발도 감행했다.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긴장 완화를 논의했다. 여기서 8·25 합의가 나왔고 확성기 방송은 중단됐다. 그러다 2016년 1월 8일 다시 대북 확성기가 가동됐다. 그해 1월 4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정책 중 하나였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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