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익위원 빠진 새 노사정 대화기구 … 합의 잘 이끌어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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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원석 경제부 기자

장원석 경제부 기자

새로운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의 명칭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정됐다. 23일 열린 제3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다. 위원 수는 기존 10명에서 1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노사 대표 각각 5명, 정부 대표 2명, 사회적 대화기구 대표 2명, 공익 대표 4명이 참여한다. 문 위원장은 “하루 빨리 출범시켜 사회적 대화가 속도를 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 취지 무색해져 #세 번 만났지만 논의 체계 확정 못해 #노동개혁 타이밍 놓칠 우려 커져

하지만 기대대로 될까. 큰 진전이 있는 듯 보이지만 노사정 대표자가 세 번이나 모여 이제 겨우 이름을 정했을 뿐이다. 비정규직위원회, 여성위원회 및 청년위원회를 우선 설치하기로 했지만 업종별 논의 체계는 확정하지 못했다.

현행 상무위원회는 운영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노사정 대표가 각각 2명씩 참여하는 구조로 바꾸기로 했다. 기존엔 공익위원 2명이 참여했었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자문을 하고,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을 뺀 것이다. ‘노사 중심의 협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이유지만 노사가 건건이 대립할 게 뻔한데 중재자도 없이 제때, 제대로 합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익위원이 빠지면서 사회적 대타협 기구라기보다 노사 대표기구로 바뀐 측면도 있다.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 취지가 무색하다.

이렇게 대통령 취임 1주년이 코앞인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아직 출범도 못했다. 민감한 이슈가 한둘이 아니라 머리를 맞댄다고 쉬운 합의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화기구가 합의안을 도출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2015년 진통 끝에 9·15 노사정 대타협이 성사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발목을 잡혀 시작도 못 한 채 사장됐다. 대체 노동개혁은 언제 시작하느냐는 탄식이 쏟아지는 이유다.

익명의 전문가는 “사회적 대타협을 한다지만 노사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9·15 대타협 이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4차 산업혁명이란 중요한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9·15 대타협 이행 방안을 모색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9·15 대타협은 정규직 과보호 완화, 공정거래 질서 확립, 근로시간 단축, 산업재해 범위 확대, 유연성 확대와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을 아우른 포괄적 합의였다. 국내에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해외에선 아주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베로니크 티메르하위스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 사무총장은 “한국의 대타협은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합의”라며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놀랐는데 선제적인 대타협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9·15 대타협의 한 축이었던 한국노총은 합의 126일 만인 2016년 1월 파기를 선언했다. 당시 파기의 핵심 명분은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2대 지침이었다.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이다. 저성과자를 해고할 때 절차와 요건, 근로자에게 불리한 근로 조건을 도입할 때 노조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2대 지침은 문재인 정부 들어 폐기됐다. 파기의 이유가 사라졌으면 9·15 대타협을 이행하는 게 맞지 않나.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사회적 대화의 형식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며 “우리 스스로 사회적 대화를 지연시킨 데 대해 성찰과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장원석 경제부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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