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곪아 터진 쇼트트랙 파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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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속으로는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선수 가족까지 합세한 막싸움으로 곪아있었다. 선수단이 귀국한 4일 인천공항에서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가 빙상연맹 임원에게 손찌검까지 한 사태(본지 5일자 16면)는 그동안 곪았던 고름이 터진 것이다.

한국 쇼트트랙은 그동안 편 가르기가 큰 문제였다. 15년간 대표팀을 이끈 전명규(한국체대 교수) 감독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직후 물러난 뒤 매년 코칭스태프가 교체됐다. 한국 쇼트트랙 1세대인 이준호를 비롯해 김기훈.최광복.김소희.전재수.전재목.윤재명.차경철 코치가 계속해서 자리바꿈을 했다. 태극마크를 달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선수 부모들은 자기들과 친한 지도자가 국가대표팀을 맡기를 원한다. 그래서 숱한 '바짓바람'과 '치맛바람'을 일으켰다. 또 개인 교습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길러낸 선수들을 태릉에 입촌시키기 위해 학연.지연을 찾아 편 가르기를 해왔다.

그러나 대한빙상연맹은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선수 보호'를 이유로 근본적인 처리를 하지 못했다. 지난해 대표선수들이 특정 코치를 몰아내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을 때 연맹은 지도자들을 내쫓으면서도 선수들은 경고조치로 끝냈다. 토리노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국체대 소속인 안현수는 한국체대 여자선수들과 함께 박세우 여자코치의 지도를 받고, 반대로 한국체대 소속이 아닌 변천사.진선유 등 여자선수는 남자코치인 송재근 코치의 지도를 받는, 기형적인 형태를 묵인했다. 지난해 말 월드컵 쇼트트랙에서 파벌이 다른 한국 선수끼리 경기를 방해했다는 선수의 고백이 있었을 때도 연맹은 "올림픽 이후에 보자"며 쉬쉬했다.

박성인 대한빙상연맹회장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사태가 점점 커졌다"며 초기 대응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어차피 한번은 터질 문제였다. 오히려 잘 됐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이 끝났다. 이번이 대수술을 할 기회다. 원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선수나 지도자, 그리고 선수 가족은 얼음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위기는 곧 기회다.

성백유 문화스포츠브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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