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예정지 반짝 식목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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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2리 마을 밭에 수령 10∼15년 된 배나무 수백 그루가 1m 간격으로 심어져 있다. 정상적인 과수원의 경우 배나무는 보통 3.5m 간격으로 심는 점으로 미뤄 보상을 노리고 심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음성=신동연 기자

5일 오후 2시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2리. 마을을 관통하는 지방도로를 지나 농로로 접어들자 밭 1000여 평에 10년생쯤 돼 보이는 배나무와 사과나무 수백 그루가 심어져 있다. 주민 박모씨는 "한 달 전쯤 외지인이 와 심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봄이 되면서 마을 논밭 여기저기에서 나무심기가 한창"이라고 말했다. 혁신도시(11곳)와 기업도시(6곳)를 비롯해 충남도청 이전 후보지(예산.홍성) 등 전국 주요 개발예정지에 나무심기 열풍이 불고 있다. 대부분 보상을 노린 것이다.

특히 혁신도시 예정지의 나무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혁신도시를 지정하면서 이 같은 편법행위를 막을 근거조차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민 세금으로 지출할 보상금이 낭비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 '나무밭'으로 변하는 논밭=혁신도시 예정지인 대구시 동구 신서동 논밭(1만1000여 평) 곳곳에는 지난해 가을 이후 키가 1m 남짓한 매실.대추나무 등이 들어찼다. 전남 나주시 금천면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밭에 나무를 심은 사례가 35건이다. 음성군도 최근 맹동면 혁신도시 예정지에서 편법 나무심기 사례 7건(7000여 평)을 확인했다.

충북도가 오송신도시를 건설하는 청원군 강외면 주요 도로 주변 대부분의 논밭은 최근 몇 달 사이에 '나무밭'으로 탈바꿈했다. 주민 김모(65)씨는 "신도시에 편입되는 밭 500평에 사과와 배나무를 심었다"며 "다른 논밭에 있는 나무도 대부분 보상용"이라고 털어놨다.

이모(42.강외면)씨는 "토지 보상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낮기 때문에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토지공사에 따르면 보상금은 나무 종류나 수령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사과.배나무의 경우 10년생 기준, 그루당 18만원 정도이고, 포도나무는 4만~6만원, 복숭아는 10만~12만원이다.

◆ 제재할 방법 없어=건교부는 지난해 말까지 지정한 전국 11개 혁신도시를 효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혁신도시건설지원특별법안을 마련, 입법예고(3월 16일~4월 5일)했다. 이 법안에는 나무심기를 막는 내용이 없다. 해당 자치단체는 편법 행위를 적발하고도 처벌조항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음성군 관계자는 "건교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했지만 단속초소를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하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김학규(51) 한국감정원 대전지점장은 "입법을 좀 더 신중하게 했더라면 무분별한 나무심기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 예산(보상금)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시행령에 나무심기 금지조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

◆ 묘목값도 덩달아 올라=전국 과수 묘목의 70%를 공급하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묘목시장에서는 5일 현재 감나무 묘목 한 그루 가격이 4000원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두 배 올랐다. 경북 경산에서는 매실 묘목 가격이 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1000원)보다 세 배나 뛰었다. 묘목 상인들은 묘목값 급등에 대해 "지난 겨울 한파로 생산량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최근의 무분별한 나무심기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김방현 기자, 전국종합 <kbhkk@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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