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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정치 코드와 죽음의 삼각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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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사라진 건 평준화의 결과다. 거기에 적개심을 집어넣는 건 20대 80의 정치 논리다. 이 정부는 모든 정책에 평등의 잣대를 들이댄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평준화와 그것을 받쳐주는 3불(不)정책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근본을 건드리지 못하고 파생되는 문제마다 새로운 정책을 덧칠해 누더기를 만들었다.

교육부와 사전 협의도, 전문적인 검토도 없이 학군을 주무르고, 실업고 특별 입학 비율을 늘렸다 줄였다 한다. 같은 사람이 재경부 장관 때 하던 말과 교육부 장관 때 하는 말이 다르다. 야당 정치인이 성과를 거둔 탓일까, 영어 마을은 장려하다가도 그만 만들라고 한다. 자립형 사립고도 오락가락이다. 그러니 입시제도가 '난수표'라는 말이 나오고 유명 강사의 진학상담은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지경이다.

평준화의 논리는 학생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사교육비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한 야당 후보가 내세운 구호를 흉내내 이렇게 물어 보고 싶다.

"학생 여러분, 요즘 공부하기가 수월해졌습니까?"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답한다. "아니오"다. 고등학생이 입시제도를 비판하며 만들어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이다. 자신들이 본고사 세대보다, 수능세대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한다. 내신과 수능과 논술까지 15번 정도의 시험을 치르면서 죽음으로 내몰린다고 항변한다. 본고사에서 실수해도 다음해를 기다릴 수 있지만 내신시험을 한번 잘못 보면 평생 낙인이 된다. 지난해 고1생의 연이은 자살 배경이다.

그러면 또 물어 보자. "학부모 여러분, 사교육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까?"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계 지출 가운데 교육비 비중은 1981년 6.4%에서 2005년 11.6%로 커졌다. 사상 최고치다. 교육부 자료로는 교과 과외 수강률이 80년 14.9%에서 2003년 72.6%로 늘었다. 연간 13조6485억원이 들어갔다. 입시가 없는 중학생(92.8%)이 일반계고(87.8%)보다 교과 과외를 더 많이 한다. 교육비로 인한 가계부채 비중도 99년 6.7%에서 2003년에는 8.9%다. 이러니 25.2%가 '기회만 되면 교육 이민을 가고 싶다'고 아우성치게 된다.

평준화 1기생인 나는 교과서 읽기만 하는 고3 영어 교실에서 보냈다. 전국 상위 1%와 하위 1%가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요즘도 형편이 나아지진 않았다고 한다. 전교조는 능력별 수업마저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힘들 수밖에 없다. 수준에 맞춰 배울 수 있는 사교육에 기대게 된다.

재산이 많고 적고, 부모가 잘나고 못나고에 따라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시험 성적만으로 아이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를 음대에 집어넣는 게 평등은 아니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는 게 평등이다.

교육 경쟁은 우리끼리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다. 우리보다 먼저 평준화를 했던 일본은 초.중학생에게까지 학교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근본부터 재검토하지 않고선 교육에 미래가 없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