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전선언, 한·미연합체제 훼손해선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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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4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65년 끌어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미 국무부는 “휴전(정전)협정에 대한 공식적인 종식을 보고 싶다”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7일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 논의를 축복한다”고 했다. 중국도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지지한다”고 논평했다.

문 대통령, 평화협정 체결 추진 의사 #유엔사·연합사 해체 이어질 수도 #섣부른 협정에 베트남 공산화 교훈

문 대통령의 발언이나 미·중의 희망대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 틀림없다. 정전협정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1953년 체결했고, 그 결과 한반도는 지금까지 휴전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도 북한은 강릉 무장공비 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도발해왔다. 이제는 핵무기까지 개발해 위협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북한 도발에 끊임없이 시달려왔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 전환은 중요하고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기와 조건이 문제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평화의 뜸’도 들이기도 전에 해버리면 설익은 밥이 될 수 있다. 베트남이 그랬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1955년부터 시작된 지루한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해 73년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자 북베트남은 다시 전쟁을 개시했다. 그 결과 남베트남(월남)이 패하면서 공산화됐다. 이후 10만명의 남베트남 출신 인사들이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됐고 100만명이 수용소에 보내졌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지금의 베트남으로 재탄생했다. 21세기 최대의 비극으로 꼽히는 예멘 내전도 마찬가지다. 1990년 남·북 예멘이 합의 하에 통일했으나 권력 분배와 차별로 94년 다시 전쟁이 발생했다. 예멘은 여전히 내전 상태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안보시스템에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종선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반도 안보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레바퀴인 유엔사령부가 해체된다는 게 이유다. 유엔사는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한 유엔안보리 결의로 창설됐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사는 북한의 침공을 막는 실질적인 전쟁 수행자였다. 유엔사는 또다시 전쟁이 발생하면 유엔 참전국들이 보내는 전투력을 수용하는 허브 역할을 맡도록 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엔사는 일본 요코스카의 미 7함대사령부 등 핵심 주일 미군기지를 후방지원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미연합사도 있을 명분이 없어진다. 결국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 도발에 대비한 한·미 전쟁수행체제의 와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그땐 주한미군이 존속되더라도 큰 역량을 발휘할 수가 없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베트남이나 예멘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한반도에 확실한 평화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극도의 신중을 기하는 게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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