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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82년생 김지영'의 하루, 여가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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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01면

한국인 24시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최지연(36)씨가 두 딸을 데리고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최씨의 9시 출근 성공 여부는 두 딸이 앞만 보고 걸어주느냐에 달렸다. [김경빈 기자]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최지연(36)씨가 두 딸을 데리고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최씨의 9시 출근 성공 여부는 두 딸이 앞만 보고 걸어주느냐에 달렸다. [김경빈 기자]

주업노동 430분, 돌봄(육아) 290분, 여가 20분….

6세와 19개월 된 딸을 둔 직장인 최지연(36)씨가 지난달 22일 사용한 시간 내역이다. 하루 1440분(24시간) 중 자신을 위해 쓴 여가는 잠자기 전 책을 읽은 20분이 전부였다. 여가시간 없이 주업노동과 돌봄·가사로 채워지는 빡빡한 최씨의 하루는 특이 사례가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상징되는 ‘30대 직장맘’들에겐 보편적 일상이다.

중앙SUNDAY는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주익현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자료 16만1697건을 분석했다. 여가시간량이 하위 25%에 속하는 ‘시간 빈곤층’을 추적한 결과 여성, 30대, 자녀가 있는 직장인이라는 특징을 확인했다. 이들의 여가시간은 하루 평균 173.9분으로 전체 평균(302.5분), 같은 조건의 남성(237.1분)보다 크게 적었다. 성장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감수해왔던 ‘82년생 김지영’들이 여가시간에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모양새다.

30대 직장맘의 시간 빈곤은 육아를 중심으로 한 ‘돌봄노동’의 편중 때문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하루 평균 돌봄노동 시간(2014년 기준)은 142.4분으로 같은 조건의 남성(53.9분)보다 월등히 길었다. 여가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상관관계 분석에서도 30대 여성은 여가시간과 돌봄시간 사이 반비례 관계가 성립했다. 하지만 남성은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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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시간 불평등은 시대가 변해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30대 여가시간의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1999년 0.350에서 0.332(2004년)→0.336(2009년)→0.350(2014년)에 머물렀다. 여가시간의 부익부빈익빈이 다시 심화되고 있었다. 지난달 30대 직장맘 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중앙SUNDAY 샘플조사에서도 이들의 여가시간 평균은 135.9분으로 같은 조건의 남성(240분)보다 적었다.

한준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아빠는 직장에서 오래 버텨 돈을 벌고 엄마는 자녀를 키우며 잘 뒷바라지하는 게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모델이 통용될 수 없게 세상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엄마에겐 돌봄노동을 전담케 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엄마의 여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왜곡된 가족모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돌봄노동을 나누는 시간의 사회적 재배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시간조사 어떻게 분석했나

생활시간조사는 통계청이 1999년부터 5년 단위로 시행해 온 대규모 사회조사다. 표본 가구원들이 10분 단위로 이틀간 자신이 주로 한 행동을 일지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조사한다. 지금껏 네 차례 조사에 총 4만9850가구, 12만1838명이 참여했다.

중앙SUNDAY는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주익현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이 조사에서 수집된 만 20세 이상 남녀의 생활시간 원데이터 16만1697건을 분석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간이 빈곤한 집단을 추적했다. 여가시간이 가장 부족한 하위 25%를 ‘시간빈곤층’, 너무 많은 상위 25%를 ‘시간과잉층’으로 정의했다. 여성·30대·자녀 있음·직장인이라는 특징을 가지면 시간빈곤층에, 남성·60대 이상·미성년 자녀 없음·무직자에 해당하면 시간과잉층에 포함되기 쉬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지난달 19~31일 각각 시간빈곤·과잉층의 특징에 부합하는 남녀 20명에 대한 샘플조사를 진행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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