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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분 앞에, 아닌 분 뒤에"…TV 예능·오락에 만연한 성차별

중앙일보

입력

안방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 만연한 성차별적 내용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안방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 만연한 성차별적 내용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여성 브런치 모임 단속해야" "예쁜 분은 앞에 앉아라"
최근 TV에서 여과없이 나온 문제성 발언 중 일부다.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예능ㆍ오락 프로그램 속에 고정관념ㆍ외모지상주의 등을 부추기는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은 지난달 1~7일 방송된 지상파(3사),ㆍ종합편성채널(4사)ㆍ케이블(2사)의 예능ㆍ오락 프로그램 중 시청률 상위 33편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19일 공개했다.

지난달 시청률 상위 33편 모니터링 결과 #성차별적 내용 56건 확인, 지난해보다 ↑ #"여성 브런치 모임 단속해야" 발언 나와 #개그 코너선 신체 접촉 반복, 성적 대상화

모니터링에서 확인된 성차별적 내용은 총 56건에 달했다. 프로그램 한 편 당 1.7건 꼴이다. 성평등적인 내용(7건)과 비교하면 8배 수준이다. 지난해 7월 모니터링에서 집계된 성차별적 내용(19건)보다 더 나빠졌다.

이번에 지적받은 내용은 대개 성별 고정관념과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었다. 유형별로는 성역할 고정관념 조장이 28건(50%)으로 가장 많았다. 성희롱ㆍ성폭력 정당화(2건), 선정성(4건) 등도 나왔다.

종편의 A 프로그램에선 한 남성 출연자가 왜곡된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냈다.

"적어도 브런치 모임이 있는 한 정부가 어떠한 부동산ㆍ교육 정책을 내놔도 성공할 수 없어요. 정책이 발표되면 바로 다음 날 브런치 모임을 갖고 작전을 설계해서 단합 행동을 해요. 여자 3명 이상 모인 브런치 모임을 단속해야 해요."

왜곡된 성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노출한 종편 프로그램. [사진 양평원]

왜곡된 성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노출한 종편 프로그램. [사진 양평원]

케이블 B 프로그램의 남성 출연자는 여성 방청객 외모를 폄하하고 놀림거리로 소비했다.

"예쁜 것 같다 하는 분들은 앞으로 앉아 주시고, 난 좀 아닌 것 같다 하는 분들은 뒤로 자리를 좀 바꾸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또다른 케이블 프로그램의 개그 코너에선 "닭고기방, 여기는 소고기방, 여기는 돼지고기방, 얼굴은 오서방이네"라며 여성 출연자의 외모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등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방송된 지상파 프로그램. [자료 양평원]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방송된 지상파 프로그램. [자료 양평원]

남녀 구분 없는 성적 대상화도 나타났다. 지상파 C 프로그램에선 상대방 동의 없이 신체를 만지는 행동이 수 차례 반복됐다. 이는 성폭력에 해당할 수 있지만 별 문제의식 없이 개그 소재로 활용됐다. 여성 방청객에게 하녀 역할을 맡기면서 '빗자루'라는 물건으로 지칭하고 "꼬리를 친다"면서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 또한 남성 출연자가 "하지마"라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여성 출연자가 "속옷, 야릇한 눈빛, 섹시"라는 선정적 대사와 함께 신체 접촉을 반복했다. 이러한 개그 코너들은 모두 성희롱ㆍ성폭력을 희화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양평원은 "최근 성차별ㆍ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자정 노력이 확산되는데도 TV 예능ㆍ오락 프로그램의 성평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방송사와 제작진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양평원은 이번 모니터링에서 확인된 성차별적 사례 일부에 대해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개선 요청을 하기로 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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