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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역기능도 생각하자|이한구(경박·대우 경제 연구소 사무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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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융자산실명제등과 같은 일반적으로 비중이 큰 정책문제를 다룰 경우 「제도의 변혁이 추구하는 정책목적에 진실로 합치하는가」「목적부합성을 갖춘 제도라도 다른 중요한 정책목적과 상충될 경우 각각의 정책목적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부여할 것인가」「제도 변혁의 원래 취지가 실제로 나타날 것인가」등과 그 사회의 정치사회 수준, 중요 집행기관의 자질에 따라서도 변화가 올수 있다는 점등을 감안해야 실수를 최소화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금융비밀주의 (가명구좌허용)의 논리는 첫째, 금융저축의 절대적 부족 상태에서 경제 주체들이 저축을 소비보다 선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고 둘째, 공적 금융기관의 예금등이 비제도 금융권의 투자수단과 비교할때 저금리 정책으로 더 낮은 수익을 감수해야 했을뿐만 아니라 과세표준이 1백% 현실화되어 있기때문에 과표가 매우 낮은 부동산 소득등에 비해 높은 세부담을 갖게되며 부동산투기·골동품·사채거래등에 비해 세원이 쉽게 포착되는등의 불리한 점이 많기때문에 비밀주의는 이에대한 보상수단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는 점등이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밀주의는 지하경제를 확대시켜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하락시키고 사회전반에 걸쳐 「도덕적 무감각상태」를 만연시킬뿐 아니라 조세부담공평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 요인중의 하나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실명제를 실시하면 비밀주의의 문제점은 없어지는가?
첫째, 지하경제의 해소문제는 지하경제발생의 수많은 원인이 되고 있는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각종 범죄, 사채행위, 심한 정부규제, 지나치게 높은세율등은 그대로 둔채 지하경제에서 번돈을 숨길수 있는 많은 곳중의 하나에 불과한 「예금구좌의 비밀유기」만을 배제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우리나라의 경찰·검찰·국세청·기타 정보기관들이 실명화된 예금구좌를 활용해서 범죄추적·과세자료로 적극 활용하려고 시도할 때 일어날 사생활의 침해정도는 우리사회가 수용할만한 것일까? 특히 행정권의 재량남용이 항상 문제되고 각종공적 정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왔던 것이 우리의 과거였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것인가 하는 점도 문제다.
둘째, 현시점이 자산소득에 중과해도 괜찮은 시기인지, 자산소득 중과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현 상태에서 다른 자산소득 (사채이자, 부동산투기및 임대소득, 골동품·환투기등과 제도금융권 자산소득간에 공평한 과세가 가능할 것인지를 세원포착의 용이성 (소득종류별 세무조사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감안해서), 과세표준의 현실성이라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것이다.
또 현단계에서 실명제 실시로 나타날 새로운 부작용, 새로운 불공평성은 없는가도 생각해야한다.
이밖에 경제적 측면에서는 공금리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본이 우리 경제에 공헌하는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대체투자수단 (부동산·사채등) 보다 오히려 중과세하는게 「공평」한 것인가 하는 점도 검토의 대상이 돼야한다.
거액예금자일수록 금리감응도가 높고 다른 곳(부동산·사채등 비제도금융권 또는 외국)으로 자금을 움직이기가 쉬운 성향을 갖고 있는데 무리한·실명제 실시로 오히려 지하경제를 촉진시키는 우는 범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또 정치발전면에서의 실명제실시는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권력구조와 음성적인 정치자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야당들이 그나마 필요한 정치자금을 조달할 길이 심하게 제약되어 균형있는 정당정치의 발전을 통한 정치및 경제민주화에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점도 생각해야한다.
금융자산 실명제는 명분상 한시바삐 실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고려하고 그 부작용을 극소화시키는 방안을 먼저 강구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금융자산 실명제는 미래의 일정시점을 예시해서 단계적으로 실시해야한다고 본다 (예컨대 차별과세폭을 계속 확대하는 것등). 둘째, 그동안 실명제 실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제도 마련등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예컨대 금리자유화, 과세표준 현실화, 세무행정상 모든 대체 투자수단에서 생길 소득을 정확히 포착할수 있는 정보 수집·처리 능력의 제고, 정당운영비의 국고부담제 검토). 셋째, 금융자산 종류별로 납세후 수익률간의 균형유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과세및 개별금융시장에서의 규제정도와 자산별 투자위험도를 종합 고려해서 판단해야 함). 네째, 어떠한 위험을 치르더라도 노출되기를 꺼리는 「불가피한 자금」에 대해서는 아주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거나 특정 국공채에만 투자할수 있게하는 등의「한정된 탈출구」를 마련해 제도금융권 내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탈출구 마련으로 인해 취급 금융기관만이 얻을 특별이익은 공공목적의 특정한 개발사업을 위해 사용되는등 사회에 환원되어야만 그 정당성이 인정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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