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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리에서 숲으로 간 호랑이…1년간의 적응기 들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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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지난해 11월 30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숲. 백두산 호랑이 두 마리가 한 우리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한참이나 서로를 응시하며 탐색하는 듯했다. 이내 한 호랑이가 먼저 앞발을 들어 다른 호랑이의 머리를 툭 쳤다. 으르렁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30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두 마리 첫 합사 영상 캡처.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지난해 11월 30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두 마리 첫 합사 영상 캡처.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한참 어슬렁거렸을까. 두 호랑이는 금세 고양이처럼 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싸울까 전전긍긍하며 지켜보던 10여 명은 그제야 옅은 숨을 내뱉었다. 그간 호랑이를 돌봐온 수의사, 조련사, 수목원 직원 등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들이 숲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들이 숲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민경록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동물관리팀 주임은 "호랑이는 자신의 영역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은 동물"이라며 "처음으로 두 호랑이가 같은 공간에 있게 돼 혹시 싸울까 너무 걱정했는데 서로 장난치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이날 모두 호랑이가 놀라서 예민해질까 봐 속으로만 박수를 쳤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들. 각자 우리 안에서 서로 얼굴 익히기를 하고 있다.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들. 각자 우리 안에서 서로 얼굴 익히기를 하고 있다.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수목원에서는 호랑이들을 돌봐왔던 지난 1년 가운데 가장 기뻤던 순간을 이날로 꼽았다. 백두산 호랑이 우리(7)와 한청(13·암컷)이 첫 합사를 하던 날이었다. 그 이전 6개월 동안 둘은 다른 우리에서 서로를 지켜볼 수만 있었다. 이들은 합사 후 한 공간에서 살았다. 그리고 곧 축구장 크기의 7배인 4만8000㎡의 드넓은 숲에서 뛰놀며 관람객을 만날 예정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 전경. [사진 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 전경. [사진 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오는 3일 수목원의 정식 개방과 함께 두 호랑이가 사는 호랑이 숲을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우리와 한청이 사는 곳이다.

둘은 지난해 6월 서울대공원에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옮겨 왔다. 서울대공원에서 함께 왔지만, 수목원에 오기 전까지는 서로를 알지는 못했다. 각자 다른 우리에서 살았던 탓이다. 아직 적응 시간이 더 필요해 숲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두만(17)이도 있다. 두만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2005년 중국이 한중산림협력회의를 통해 한국에 기증했다. 이후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살다가 지난 1월 가장 먼저 이곳으로 이사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세 마리 호랑이는 처음에 서로 얼굴만 볼 수 있었다. 수목원에서는 얼굴 익히기를 거쳐 같은 공간에 합사해도 서로 공격하지 않는 상태가 될 때 호랑이들을 호랑이 숲에 방사할 계획이었다.

좁은 우리에서 살았던 탓일까. 호랑이들이 숲으로 나가기까지는 당초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지난해 가을쯤 일반관람객에게 호랑이 숲을 개방하려고 했던 수목원 측에서는 호랑이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개방 시기를 같은 해 겨울, 올해 봄으로 점점 늦췄다.

경북 봉화군의 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 세 마리가 숲으로 나가기 전 얼굴 익히기를 하고 있다.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경북 봉화군의 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 세 마리가 숲으로 나가기 전 얼굴 익히기를 하고 있다.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우선 호랑이들이 수목원에 와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과정만 6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1월 30일에서야 우리와 한청이 같은 공간에서 만났고 두 달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올해 1월 17일 호랑이 숲으로 나갔다. 처음부터 전체 숲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수목원 측에서는 10단계로 범위를 넓혀가며 호랑이를 방사시켰다. 민 주임은 "처음부터 넓은 공간에 방사시키면 우리에만 살았던 호랑이들이 예민해질 수 있기 때문에 구역을 10단계로 확장하면서 방사 공간을 넓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두만이도 빠지게 됐다. 두만이는 17살로 사람 나이로 치면 80세 노인이다. 거기다 그동안 자신의 영역에 조련사가 들어올 경우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수목원 측은 우리와 한청이를 합사할 때 두만이에게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만이는 지금 호랑이 숲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방사장에서 숲에 적응 중이다.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의 거울연못.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의 거울연못. [사진 백두대간수목원]

이제 두 호랑이는 좁은 우리가 아닌 숲에서 뛰면서 자연을 만끽한다. 옥석산·구룡산·각화산 등 수목원을 둘러싼 4개의 산에서 흘러온 계곡물에 시원하게 물놀이도 할 수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경.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경.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김용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은 "과거 백두대간을 호령하던 백두산 호랑이를 자연생태에 가까운 넓은 방사장에서 볼 수 있도록 숲을 조성했다"며 "앞으로도 백두산 호랑이의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추가로 몇 마리를 더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산책길.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의 산책길.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호랑이 숲 외에도 고산습원·야생화언덕·거울연못·어린이 정원 등 전시원만 26개를 갖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다. 5179만㎡ 일대에 1982종의 희귀식물들이 전시·보존돼 있다. 산림청은 백두대간의 체계적 보호와 산림 생물자원을 보전·관리하기 위해 2011년~2015년 2200억원을 들여 수목원을 조성했다.

봉화=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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