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신사 원가 공개 판결, 기업 혁신 꺾는 결과 안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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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참여연대가 2011년 통신사 원가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낸 지 7년 만이다. 대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한 자료는 2G·3G 서비스와 관련된 재무 및 영업 자료 등이다. 대법원은 “통신요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할 공익적 요청이 해당 자료가 지닌 영업비밀의 가치보다 더 크다”고 판시했다.

이동통신 3사는 “민간 기업의 원가 산정 근거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매출을 영업비용 등의 원가로 나눈 ‘원가보상률’의 공개다. 시민단체는 원가보상률이 100%를 넘으면 통신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이런 발상이 망 구축 초기 큰 투자를 한 뒤 갈수록 이익을 뽑아 나가는 업계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원가보상률로 요금을 결정한다면 5G 같은 신규 서비스를 시작할 때 요금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격을 잡는 수단으로 툭하면 ‘원가 공개’가 거론되곤 한다.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기름값 원가 분석 소동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무분별한 원가 공개 압박은 기업의 혁신 노력을 꺾는 반시장주의적 독이 될 수 있다. 생산성과 기술력을 높여 원가를 줄이려는 창의적 노력이 바로 기업 경쟁력의 출발점 아닌가. 게다가 원가는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요구가 거셌던 2004년 “원가 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 판결 직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통신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기업의 혁신 노력을 꺾는 부작용과 후유증은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