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준 이들에 용서 구한다’ 교황, 성추행 옹호 발언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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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한 당시 서소문 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공동취재단]

2014년 방한 당시 서소문 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칠레주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11일(현지시간) 공개편지를 통해 "진실하고 균형 잡힌 정보가 부족해 상황을 판단하고 인식하는데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상처를 준 모든 이에게 용서를 구하며, 수주 내로 그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청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지난 1월 칠레 방문 당시, 아동 성추행 은폐 의혹을 받고 있던 후안 바로스 주교에 대해 "증거를 갖고 오면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것",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중상모략"이라며 옹호하는 발언을 해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바로스 주교는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2011년 면직된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다. 바로스 주교는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성추행 피해자들은 바로스 주교가 성추행 장면을 목격하고도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수년간 주장해왔다.

교황은 지난 1월 자신의 발언 이후 비난 여론이 일자 귀국 비행기에서 "(내 발언이) 학대받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나도 모르게 그들을 아프게 한 것에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교황청 고위관리인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를 칠레로 보내 성추행 은폐 의혹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교황은 이날 편지에서 "영혼의 상처를 용기 있게 견뎌내며 (성추행 피해를) 증언해준 64명에게 감사한다"며 "2천300여쪽에 달하는 조사단 서류를 읽으며 나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칠레 주교단을 바티칸시티로 소집했다. 교황이 이 같은 주교단 긴급회의를 여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성직자 성 추문 사건이 크게 불거졌을 때도 이런 회의가 열린 바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해 칠레의 전 주교를 긴급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기로 했으며, 성추행 피해자들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용서를 구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교황은 "이번 회의의 목적은 이번 스캔들과 관련된 상황을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며 "우리의 실수와 죄로 무너진 교회에 대한 신뢰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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