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플라스틱·비닐봉지에 중독된 비싼 대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350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2001년 9·11테러 다음날.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 50개 층을 사용 중이던 모건 스탠리의 전 세계 지점들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업무를 재개할 수 있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알카에다가 가한 첫 폭탄테러를 경험한 이후 이 회사는 향후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 플랜을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다. 8년간 3개월에 한 번씩 테러 대응 모의훈련을 했다. 비상연락체계와 연락 두절 시 집합장소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직원들이 숙지했다.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9·11테러 와중에 모건 스탠리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재활용쓰레기 대란으로 곳곳 홍역 #비닐봉지 사용량 핀란드의 100배 #1인 가구 시대에 과대포장 심각 #각성한 시민이 문제 해결 나서야

플라스틱과 비닐에 이어 폐지까지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져 최근 사회적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환경부·지방자치단체·재활용업체들이 ‘폭탄 돌리기’로 겨우겨우 위기를 넘기고 있다. 순진한 발상인지 모르지만 나는 모건 스탠리의 대응 방식을 재활용 쓰레기 문제에 적용해 보고 싶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 해결 방식도 이참에 되짚어봤으면 한다.

일단 비닐 쓰레기 발생량이 너무 많다. 만드는데 1초, 쓰는데 20분인 비닐봉지는 분해되는 데 400년이 걸린다. 사실상 자연 분해가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 대서양엔 한반도 15배의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이런 대륙 크기의 쓰레기 나라가 3개가 더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많아지는 사태를 우리는 금세기 안에 보게 될 것이다.

특히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소비 패턴에 맞춰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소규모 단위의 포장이 유행하고 있다. 게다가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들어있더라”는 우스개처럼 과대포장도 증가하고 있다. 2003년 연간 125억개였던 비닐봉지 생산량은 2008년 147억 개로 늘었다. 2013년 191억 개, 2015년 216억 개로 증가했다. 1인당 연간 420개 정도를 쓰는 셈인데 이는 핀란드의 100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독일은 2019년 1월 1일부터 모든 기업이 포장재 회수와 재활용·폐기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신포장재법’을 도입할 예정이다. 한국도 생산자가 수거·재활용 비용까지 책임지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를 도입했으나 라면·과자 포장지만 해당하고 비닐은 해당하지 않는다.

시론 4/11

시론 4/11

1993년 세계 최초로 종이·비닐봉지에 세금을 도입한 나라는 덴마크다. 아일랜드는 2002년 ‘봉지세’를 통해 사용량을 90%나 줄였다.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가 있고 생태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케냐는 지난해 8월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어기면 3만8000달러의 벌금 또는 최고 4년형이라니 혁명적 조치다.

한국의 경우 서울시가 6일부터 ‘비닐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편의점과 약국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무료로 제공하면 5만∼3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재활용쓰레기 대란 와중에 포장재를 줄이겠다는 기업이 나옴직도 한데 아직은 눈치만 보고 있다.

쇼핑 천국 일본에서도 골칫거리인 비닐봉지 유료화 법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유통업계의 거센 반발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기업이 간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은 값이면 예쁘고 그럴듯한 상품을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고 값싸며 모양새가 좋지만 플라스틱은 요물이다. 일본 환경성의 조사에 따르면 바닷물 1㎢에서 검출된 미세 플라스틱은 모두 172만 개나 된다. 석유추출물에서 나온 미세 플라스틱은 점성 때문에 주변의 유해성분을 끌어당겨 함께 엉기는 속성이 있다. 이 미세한 알갱이들은 생선이나 조개의 살점을 통해 우리 입속으로 들어온다. 플라스틱에는 환경호르몬 등 다양한 유해 화학물질이 첨가제로 사용된다. 플라스틱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편리해서 쓴 죄로 내가 먹고 죄 없는 내 아이에게 전해진다. 당신이 먹은 게 3대를 간다지 않던가.

다시 모건 스탠리로 돌아가 보자. 누구에게나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나 위기는 존재한다. 『총·균·쇠』의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기후나 환경적 위기를 그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존망이 갈렸다고 일갈했다.

물방울 속에서 우주를 본다고나 할까. 재활용품 쓰레기 처리 문제는 결국 각성한 시민이 해결의 주체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요물단지 속의 화려한 상품과 편리함에 현혹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해 지금 나부터 어떤 행동을 꾸준히 이행해야 할 것인지. 쓰레기 대란 와중에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화두다. 프랑스 파리가 아름다운 건 파리시민들이 아름답지 않은 걸 못 견디기 때문 아닌가.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