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미국 싱크탱크 검열하려는 한국 진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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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한마디로 학문의 자유 침해다. 발단이 청와대든, 국회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USKI)의 인적 청산 시도와 예산중단 사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은 그렇다. 진보 정부가 왜 미국 연구소의 학문적 입장을 검열하느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보수·진보적 성향과 관계없이 전문가들은 이 원칙에 대해선 목소리가 같다.

워싱턴 내 온건한 협상파로 꼽히는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7일 트위터에 “학술기관의 기부자가 자신들의 기부금을 갖고 특정 연구자들을 목표로 삼고, 정책적 입장을 지시하려고 한 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학문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과 발리 나스르 SAIS 학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북 강경파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는 자신의 블로그 ‘프리 코리아’에 “한국의 진보 정부가 미국에서 대북 정책 논쟁을 검열하려고 한다”며 장문의 글을 썼다. 스탠턴은 “역설적으로 USKI가 운영하는 북한전문 블로그 38노스는 확실히 온건한 입장이고 반(反) 반북적이며, 친포용주의쪽”이라면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반발을 살 매체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금 위험에 처한 건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원칙의 문제”라며 “미국 내 공공정책 토론의 독립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불법”이라고 했다. 또 “갈루치 이사장은 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낼 게 아니라 미국 법무장관에 편지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주장대로 시작이 국회라면 USKI에 대해 얼마나 알고 소장·부소장의 퇴진을 밀어붙였는지 의심스럽다. USKI나 38노스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서나 활동 내역을 봤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사태가 계속되면 12년간 200억 원을 투입한 공공외교 네트워크를 날리는 건 물론, 미국 정부가 앞으로 한국 정부 돈은 무조건 색안경을 쓰고 볼 가능성이 크다.

해결 방법은 있다. 국회 정무위가 지난해 9월 2018년 USKI 예산안을 의결하며 KIEP에 붙인 부대의견(“USKI 조직 개편 및 투명성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해 2018년 3월까지 조치해 결과를 보고하고, 국회는 정기국회에서 USKI 운영 성과를 평가해 출연금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대로 하면 된다. 불거진 학문 자유에 대한 침해와 절차·방법상 문제는 갈루치 이사장이나 USKI 직원들에게 깨끗이 사과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