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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짜리 적금만도 못한 퇴직연금···1.88%에 맡긴 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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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퇴직연금, 안녕하십니까 <상>

“운용 지시요? 해 본 적 없는데요. 지난해 수익률요? 얼마인지 몰라요.”

연금 운용하는 기업 담당자들 #“손실 날까봐 수익률 신경 안써요” #가입자인 종업원도 큰 관심 없어 #“연금 운용하는 별도 법인 둬야”

중소기업에서 퇴직연금을 담당하는 지원팀 소속 강명호(가명) 주임에게 퇴직연금 운용실적에 대해 묻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는 기업이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에 가입해 있다.

퇴직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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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을 얼마나 잘 굴려서 수익을 낼까’는 그의 고민사항이 아니다. 혹시 수익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적립금 중 일부라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그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원금 손실이 나면 기업이 책임져야 하잖아요. 회사 분위기 자체가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아요.”

노후에 의지할 버팀목인 퇴직연금이 흔들린다. 퇴직연금 운용에서 수익률은 기업 담당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난달 2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퇴직연금 운영지원 교육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의 인사·재무 담당 김정진(가명) 차장은 “(퇴직연금 도입을) 하라고 해서 도입했을 뿐”이라며 “수익률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평균 연 1.88%에 그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기업이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를 선정하는 기준도 수익률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 차장은 “대출 이자율을 우대해 준다고 해서 주거래은행 1곳과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노후 자산을 얼마나 잘 불려 주느냐가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 얼마나 유리한지를 잣대로 금융회사를 결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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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가입자인 종업원이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는 퇴직연금의 중요성에는 동의한다. 한국노총의 지난해 퇴직연금 조사에 따르면 응답 근로자의 93.4%가 퇴직연금은 노후의 중요한 소득자원이라도 답했다. 그런데도 직업을 떠난 뒤에야 받을 돈이라서 그런지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이 없다. 기업과 종업원이 관심을 두지 않으니 퇴직연금 담당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중소기업의 관리팀장인 C씨는 “순환보직이라 퇴직연금 업무 담당자가 계속 바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코스피가 21.76% 상승한 지난해에도 퇴직연금 수익률(1.88%)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1.65%)을 살짝 웃도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협약 임금인상률 3.6%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5년(2013~2017년) 수익률은 평균 2.39%로 2013년에 5년 만기 정기예금(평균 금리 3.2%)에 든 것만도 못하다. 금리가 낮은 1년 만기 정기예금으로 주로 운용되는 데다 수익률과 상관없이 0.4~0.5%의 수수료를 떼기 때문이다.

원금보장형에 편중된 운용의 틀을 깨려면 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승용 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퇴직연금 운용을 담당하는 별도 법인을 두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노사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적극적으로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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