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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책의 「본질」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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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구상중인 북방정책은 획기적이다. 최근 노태우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정부쪽에서 나온 통일정책은 지금까지의 선언적 의미와 선전적 차원을 넘어 본질문제로 들어가 있다. 공산권정책도 현실적 판단위에 마련된 자신감과 적극성이 곁들인 계획들이다.
정부구상은 ①남북한 학생들의 조국순례 대행진과 학생·도시·단체간의 친선경기, 해외교포의 북한방문허용 등 남북교류계획과 ②「로동신문」을 포함한 북한자료의 폭넓은 공개와 대북 비난방송의 일방적 중단 등 남북교류를 위한 개방적 분위기조성 ③공산권국가들과의 무역사무소 상호설치, 특파원 상주교환, 상호방문 외교추진 등 북방정책의 세 부문으로 요약된다. 이 모두가 전향적이고 현실적인 도전이다.
이 가운데 특히 눈을 끄는 것은 남북인 적교류계획이다. 노태우 정부는 통일논의를 개방함으로써 북방문제에 대해 1차적인 적극책을 폈다. 인적교류는 거기에 이은 제2단계 조치다.
학생과 시민, 교포의 교류계획은 통일로 가는 새로운 지평의 개막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환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는 정부가 민의를 수렴했다는 점이다. 지난번 대학생들이 6·10판문점회담을 갖겠다고 나왔을때 국민들은 그 충정을 이해하면서도 방법과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정부는 그렇게 표출된 민의를 확대 수렴하여 남북도시·사회단체간의 교류계획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교류를 통해 남북의 대학생들이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지금 우리 대학생들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고 평양지도층의 생각에 대해 환상적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대학생들도 남한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다. 이런 무지와 편견은 상호방문을 통해 정상화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남북협상과의 행적을 통해 미루어 볼 수 있다. 48년4월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 등 협상파 지도자들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지도층의 진의를 파악한 뒤 행동을 바꾸었다. 그 결과는 불행한 것이었지만 통일문제는 잘못된 환상이나 지나친 기대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셋째는 학생들의 통일 열망에서 오는 부담을 남북의 정부가 공유한다는 점이다. 우리 학생들의 성급한 통일운동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고심하고 있을 때 평양당국은 이를 환영한다면서 무책임할 정도로 선동하고 나섰다.
정부의 학생교류 제의는 그러한 평양의 뜻을 수렴하면서 그 부담을 평양도 함께 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공세가 된다. 중앙의 계획대로 박제된 학생만을 가지고있던 북한이 자유분방한 우리 대학생 다수를 맞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북한체제로서는 일종의 모험이다.
넷째는 해외교포의 북한방문이 남북의 상호이해를 촉진하는 한편 양측 사이에서 보다 중립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해외교포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어도 국내법에 저촉되어 귀국후 재판을 받기 때문에 갈수가 없었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했거나 아예 국적을 바꾼 경우도 많았다.
이제 해외교포의 북한방문이 자유화되면 그들이 서울과 평양을 화해, 접근시켜 남북관계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발행 자료의 공개도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현실화하는데 기여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우리국민이 북한의 자료를 접한다하여 평양이 의도한대로 공산주의에 동조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북 비난방송의 일방적 중단은 「7·4공동성명」의 정신과 합의를 재생시킨 조치다. 70년대초「7·4합의」에 따라 양측은 방송을 통한 상호비난을 중지했었으나 대화의 중단과 함께 다시 시작됐다. 이 상호비방이야말로 밖으로는 민족의 자존을 해치고 안으로는 민족의 분열과 상호 적대화를 가중시키는 부끄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교류는 실질적 남북교류의 첫 실험이라는 점에 중요한 뜻이 있다. 학생교류가 실현된다면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남북교류에 유익한 경험을 제공하고 교류의 문을 넓혀 평화통일의 터전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학생교류에 따른 부수문제에 대해서도 착실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국토순례와 친선경기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곁들여질 수 있고 이를 위한 준비모임에 학생대표를 참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생들은 정부계획을 받아들여 현실적인 차원에서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허황된 망상은 금물이다. 이제부터 실무적 접근에 착수해야한다.
만약 대북교섭을 처음부터 학생들이 직접 맡겠다고 나선다거나 올림픽이후로 돼있는 교류시기를 오는 8·15로 당기겠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정부주선의 교류를 거부하거나 거기에 미군철수 등 비현실적인 조건을 붙여서도 안된다. 그것은 오히려 남북교류를 지연시키고 학생들의 진의와 순수성을 의심케할 뿐이다.
양측 부국은 이것이 제의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학생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함께 협력하여 젊은이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특히 학생회담과 교류를 소리높이 지지해온 북한은 우리정부의 노력에 호응하는 한편 그 성공을 위해 북한에서도 남한 자료의 폭넓은 공개를 비롯한 각종 실무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같은 평양의 호응없이는 결코 학생교류는 성공할 수 없다.
이제 남북관계는 더 이상 선전과 정략의 차원에서 맴돌수만은 없다. 통일문제는 막연한 선언적 강령에 머물러있어서는 안된다. 조국통일은 휴전선 양쪽의 우리세대가 짊어진 공동의 역사적 과업이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험하다. 그렇다고 더이상 지연시킬 수도 없다. 서서히 착실하게 전진해 나가야 한다. 남북의 지도자들은 이 민족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겨레의 복된 터전으로 만드는 사명에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통일문제에 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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