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확산을 걱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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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우리사회에는 법과 질서와 이성은 증발하고 폭력과 난동과 파괴만이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된다.
지성의 전당이라 할 학교는 말할것도 없고 사업장과 신성한 종교의 현장에서도, 도시는 물론 심지어 농어촌에까지도 이러한 현상이 일반화되고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더욱 가공한 현상은 이같은 군집행동양식이 갈수록 살벌해지고 있다는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성남에서 근로자들이 경찰관을 묶어두고 때려 중상을 입힌 것이나 봉은사에서의 집단 난투극도 이중의 하나다. 엊그제 서울 잠실 롯데월드 신축공사장에서는 주민과 인부 등 1백여명이 충돌, 3명이 부상했고, 광양제철소 부근에서는 주민과 제철소 직원들이 난투극을 벌여 2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폭력현장에서는 각목과 쇠파이프가 날으고 칼을 휘두르는 불상사도 빚어졌다.
어이없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무서운 현상이다. 서로가 원수진 것도 아니고 적을 맞아 싸우는 전투도 아닐텐데 불신과 증오로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집단행동이 빈발하는 것인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껏해야 최루탄과 경찰력으로 맞설 뿐 뾰족한 대책도 없는것 같고 말 잘하는 정치인들도 벙어리처럼 보고만 있어 더욱 걱정이다.
모든 사회현상이 과거부터 누적되어온 결과라는 역사성에 기인하는데 원인을 분석하고 종합적인 근본대책을 마련해야하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방관만하는 느낌이다.
과격한 집단행동이 성행하게된 것은 그러한 행동이 나오게된 배경부터 이해해야한다. 한두 명이 점잖게 말로 하면 듣지 않고 수십명, 수백명이 농성하고 항의해야만 귀를 기울이고 시정되는 지난날의 권위와 관료주의 정치와 행정탓도 없지 않다.
또 권위주의 정치의 극한상황에서 길들여진 투쟁과 행동방식이 사회일반으로까지 체질화돼 오늘에까지 연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풍조에도 기인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이 탈법이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든,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든 아랑곳하지 않는 병리현상이 확산되고 일반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말로는 민주화를 부르짖고 투쟁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요체라 할 대화나 타협의 정신이나 기술은 몸에 배지 않고 합리와 이성을 찾는 습성 또한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회지도층 인사나 정치인들이 수범을 보이고 도덕과 권위를 갖추고 있으면 제어할 수 있는 힘이라도 발휘할 수 있을 터인데도 그러한 힘이나 권위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
과격한 집단행동은 크게 보면 불도저식 목적 달성주의와 싹쓸이문화, 일그러진 정치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를 위협하는 집단행동은 하루아침에 치유할 수 없는 문제고 과감한 수술과 장기간에 걸친 대증요법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정부와 사회가 다함께 노력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수범을 보이고 사회의 고질을 치료하는데 지혜와 슬기를 모으고 행동으로 앞장서 본을 보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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