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향추세 계속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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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 3, 4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는 만사형통인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던것이 어느새 여기저기서 비관론이 대두되며 경기논쟁이 일고있다.
가속되는 원고의 압박, 노사분규의 회오리, 임금상승과 투자심리의 위축, 여기에다 올림픽 후의 경기후퇴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침체국면으로의 행진을 우려하는 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각종 통계지표들을 봐도 경기가 정점을 지나 하향커브에 접어들였음을 나타낸다.
문제는 얼마나 경사진 내리막길을 어떤 속도로 내려가고 있느냐다.
하향추세를 긋는 각종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렇게 비관할 것은 못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각 연구기관의 경제전망을 보면 『금년의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나쁘고, 금년보다 내년이 더 어려워질 것이나 그렇다고 불황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내리막이긴 하지만 워낙 좋다가 다소 나빠지는 정도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KDI, KIET 모두 상반기 성장률을 11∼12%, 하반기 성장률을 8%선대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다들 걱정하는 올림픽과 경기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자. 정부당국이나 관계전문가들은 올림픽을 치렀다고해서 이것때문에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는 막연한 짐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나라를 봐도 일본만 올림픽 이듬해 한햇동안 급냉현상을 보였으나 이는 물가를 잡기위해 정부가 돈줄을 잔뜩 줬기 때문이었고 멕시코·서독·캐나다 등도 별탈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우리경제도 규모가 커져 올림픽정도는 별부담없이 치러낼 정도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올림픽을 치르는 시점이 공교롭게 경기둔화현상이 본격화될때와 일치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경기의 하강국면은 올림픽과 상관없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의 시각은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강봉균 경제기획원기획국장은 『노사분규만 진정되면 경기걱정은 안해도 된다. 12%선의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는 없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도 9%선의 걱정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낙관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사업이 늘어나는데다 민간기업 역시 자동화를 중심으로 실비투자를 계속할 것으로 봐 투자 역시 활기를 계속 띠리라는 것이다.
그리나 정부안에서도 상공부쪽 견해는 훨씬 심각하다.
박운서 산업정책국장은 『기업투자심리의 위축현상은 환율과 노사분규로 인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정부가 무차별적인 안정화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경우엔 투자를 늘려 결과적으로 수출의 공급부족 현상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이후가 문제인데 경기의 급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투자촉진책을 써나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상공부가 무역협회 등을 통해 1천2백76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설비투자계획이 금년에 19·8%늘었다가 내년에는 5·1%,내후년에는 7·6%씩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산업은행의 설비투자계획조사에서는 실비투자 위축현상이 더 빨리 일어나 금년하반기에 벌써 6·1%감소(전년동기비)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적교 한양대경제연구소장은 『80년대초 같은 급냉현상은 아니더라도 금년4·4분기에 들어서면서 경기둔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원고를 견뎌내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의 속출로 인해 실업률이 다소 높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김 소장은 또 『문제는 오히려 정치폭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정권의 재신임 등 정국의 예기치 못할 불안감 때문에 기업의 투자마인드 위축현상이 경기둔화세를 가속시킬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연종 한은외환 관리부장은 『최근 3년간의 활황이 환율과 국제원유가격의 하락 덕택이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여건은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임금이 오르고 수요가 늘어 물가안정기반이 흔들리는 마당에 수출마저 벽에 부닥칠 경우 그동안 투자한 것마저 유휴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노성태 KDI연구위원은 『전반적인 경기수준은 괜찮다해도 하반기이후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는 원고·임금인상으로 인한 대기업의 부담이 중소기업에 전가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박사는 특히 『경기자체보다 인플레와 부동산투기, 증권의 과열현상 등을 여하히 수습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업계쪽에서는 대체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최세형 무협이사는 『수출채산성이 나빠지면서 수출기업이 내수시장으로 돌아서거나 업종전환, 휴·폐업 등이 속출할 것이다. 수출의 감소가 혹자기조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실업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대주 전경련상무 역시『봉제·완구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도산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며 기업입장에서 감당해낼 원절상과 임금상승압박이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금년의 경우 추가인상부담이 24%정도인데다 환율상승 또한 연간 15%가량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금년까지는 그럭저럭 끌어가겠으나 내년부터가 문제」라는데 의견이 집약되고 있다. 사실 호황을 뒷받친해온 환율·유가·국제금리의 「3저」는 어느새 원고·임금상승·원자재상승 등의 「3고」로 뒤바뀌었고 더욱 거세어지는 보호무역주의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수출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걱정스런 부문은 투자다. 투자의 선행지표인 공장용 건축허가면적의 경우 4월들어 14·8%의 감소를 나타내고 있다. 더우기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위축되고 있는 투자심리까지 감안하면 내년들어 경기의 하강국면은 한층 가파를 수도 있다.
경기가 나빠져봐야 최소한 7%의 성장은 가능하다는 것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잘만하면 빈약했던 내수시장을 확충하고 한계기업정리 등 산업구조조정문제도 함께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아직은 비관론보다 「조건부」낙관론쪽이 우세한듯 하다.
그렇다해도 호황끝의 하강국면에서 번져나올 실업사태가 현저해질 경우 피부로 느끼게될 불황감, 더구나 그것이 정치적인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을 내년 3, 4월께부터 본격화될 경우엔 통계숫자로 예측할 수 없는 훨씬 심각한 상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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