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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소통의 힘

중앙일보

입력

 소통의 힘

 인터넷을 물리적으로 보면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세계 컴퓨터의 연결이라고 한다.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인터넷을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본다.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지만 인터넷은 크게 보면 지식과 소통의 도구다. 인터넷은 정보를 축적해 지식을 발전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하면서 거대한 힘을 만들고 있다.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정보를 집중시킨다. 고대 이집트의 절대 권력이 만들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그 상징이다. 단순히 책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라 정보를 집중시키고 지식을 발전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에 속하는 정보기관도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그것이 구글이라는 검색회사, 네이버라는 포털 회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이 만드는 또 다른 힘은 소통이다. 말하고 듣는 것은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것도 아니고 국가기관도 아니면서 언론이 공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 못하고 죽는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이를 줄여 ‘할말하않’ 또는 ‘할많하않’으로 쓴다.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정작 그 말조차도 다 못해 줄여 쓰는 느낌이 강렬하다.
 아무나 글 쓸 수 있는 인터넷 시대가 됐지만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글을 쓰다가 지운 경험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 많은 사람은 페이스북의 좋아요 클릭 한 번도 여러 번 망설인다. 타임라인에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매양 올라오는 것은 강아지와 고양이, 꽃과 음식, 아이 사진이 차지한다. 세상에 대한 물음, 삶에 대한 소회를 내놓기가 참 겸연쩍고 써놓은 다음엔 부끄러워 남몰래 다시 지우는 일도 흔하다. 알고 보면 누구나 다 그렇다.
 그런 공간에서 이런저런 눈치 안보고 열심히 주장하고 분노하고 털어놓고 자랑하는 사람은 차라리 속은 편하다. 그래도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을 못하면 분노한다. 성경에도 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인터넷은 세상에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것을 막아주는 소통창구다.
 소통을 단순히 수다로 생각하거나, 힘있는 자에 대한 교언영색(巧言令色), 무능한 자신을 숨기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 소통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이다. 마음이 울리지 않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고, 생각이 없는 글은 무의미한 기호에 다름없다. 사람은 세상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낼 때 비로소 사회적 인간으로서 완성체가 된다. 사회에 대한 자신의 주권, 권력을 갖는 것이다.
 루게릭 병을 앓다 지난 14일 별세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신체 대부분이 마비됐고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소리내기도 힘들었다. 그는 중병을 앓고 몸이 마비된 장애인이었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지식을 발전시키고 소통을 했다.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이라 불리는 도구는 사용자가 그림이나 문자를 선택해 이를 다시 음성으로 바꿔주는 방식(TTS)이다. 그는 이 기계를 통해 세상에 시간의 역사를 얘기했다.
 멀쩡한 열 손가락을 가지고 국가기관의 댓글 조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통방식을 장악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겨우 움직이는 손가락 두 개로, 나중에는 그마저 악화돼 뺨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감지해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했다. 호킹 박사는 지식의 발전과 소통이라는 인터넷의 본질에 충실했던, 진짜 인터넷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사망에 다시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