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4곳에 GE가 배우러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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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블룸버그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 포스코 본사. 미국 GE사 임원 4명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크리스티 콜번 금융시장 담당 리더와 데이비드 슬럼프 글로벌 마케팅 담당 등 GE의 고위 임원들이었다. 이들은 포스코 측으로부터 경영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이전보다 납기를 절반 이상 단축한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다. 포스코 참석자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GE의 임원으로부터 이런 질문들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GE가 본격적인 '한국 기업 벤치마킹'을 시작했다. 최고위 임원 교육 과정인 EDC(Executive Development Course) 프로그램의 방문 대상에 지난해부터 한국 기업을 넣은 것이다. 포스코.LG전자.현대자동차.삼성화재 등이 첫 대상이 됐다.

EDC는 30여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GE 임직원 중 500여 명의 고위 임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6개 사업부문의 부사장급 가운데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직접 선택한 30명을 대상으로 한 해에 한 차례 진행된다. 이들은 서너 명이 한 조를 이뤄 전세계 90여 개 기업 중 배울 만한 곳이 있다고 판단되는 4~5곳을 직접 방문한다. 귀국하면 이멜트 회장에게 벤치마킹 결과를 보고한다. GE코리아 조병렬 이사는 "GE는 리스트럭처링.식스시그마.목표대비성과관리(MBO) 등의 경영 기법을 창조해 전 세계 기업에 확산시킨 회사"라며 "이런 회사의 고위 교육 과정에 한국 기업이 포함된 것은 그만큼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EDC 참가자들은 '고객과의 동반 성장'을 주제로 각 회사의 강점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들은 LG전자에서 가전, 특히 에어컨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비결에 관심을 보였다. LG전자 측은 문제가 발견되는 제품을 가차없이 폐기하고 새로 만드는 TDR(Tear Down and Redesign) 프로젝트와 주부 품질 평가단을 활용한 품질 향상 노력 등을 소개했다. 포스코는 '납기 단축' 방법을 알려줬다. GE 참가자는 "원하는 제품을 제때 받는 게 고객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포스코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스코는 조선용 후판을 운반하는 특수차량인 로로선을 도입하고, 제철소의 생산 공정을 마케팅부서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납기를 단축하고 있다. 이들은 또 현대차에서 '24시간 품질 상황실'과 '10년 10만 마일 품질보증제도' 등의 품질 개선 노력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삼성화재에선 '수퍼보험' 등 통합보험을 개발한 이유, 고객만족을 통해 매출과 순익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GE가 한국 기업을 주목하게 된 것은 삼성전자 때문이었다. GE는 70~80년대만 해도 중.저가 브랜드였던 삼성이 명품 브랜드로 올라선 과정을 몇 년 전부터 벤치마킹했다. 조 이사는 "철저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고 올림픽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삼성전자의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나현철.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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