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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지배구조 투명해져 … 공정위 “시장 요구 맞춰 긍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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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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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건 현 정부의 대기업 개혁 기조와 맞닿아 있다.

정의선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 #글로비스 지분 팔고 모비스는 매입 #주주총회 거쳐 7월 말에 완료될 듯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취임 후 줄곧 대기업에 ‘셀프 개혁’을 강조해 왔다.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을 갖고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연쇄 지배하는 형태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었다. 순환출자 구조는 오너 일가가 투자금에 비해 과다한 의결권을 가지고,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연쇄적으로 부실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학계에서도 순환출자는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간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LG·SK 등 다른 그룹들처럼 지주사 체제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날 현대차는 지주사 전환 체제 대신 순환 고리를 끊고 모비스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모비스-현대차-기아차-모비스’ 등 모두 4개가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털어내면 순환 고리는 모두 끊어진다.

이 과정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23.29%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을 매각해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16.9%)을 사들이면 순환 고리는 사라지고, 그의 모비스 지배력은 확대된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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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현대제철(5.7%), 현대글로비스(0.7%)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사들이면 오너 일가가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기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6.96% 갖고 있지만 정 부회장은 현재 모비스 지분이 없다. 그러나 글로비스 지분을 팔고, 다른 계열사 지분까지 사들이면 정 회장 부자는 모비스 지분을 최대 29.92%까지 확보할 수 있다. 모비스가 현대차의 지분 20.8%를 가진 대주주이므로 이 같은 작업이 완료되면 ‘대주주→모비스→현대차’라는 단순한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이런 개편 시나리오는 7월 말 이후 완료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이 각 사 주주총회를 거치고 현대모비스 주식이 변경 상장되고 합병 현대글로비스 신주가 추가 거래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계기로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05년 기아차 사장을 맡은 뒤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 왔다. 고급브랜드 제네시스와 자율주행차, 친환경 자동차 등의 분야는 전담하다시피 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내 가장 많은 등기이사직도 맡고 있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 등의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정의선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외에도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우선 경영 방식이 단순화된다. 대주주는 현대모비스를 책임 경영하고, 현대모비스는 미래 기술 리딩 기업으로서 미래 자동차 기술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을 맡게 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래 자동차 서비스 및 물류·AS 부품 부문 ▶파워트레인 부문 ▶소재 부문 ▶금융 부문 등의 개별 사업군을 관리하면 된다.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피할 수 있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준을 ‘오너일가 지분율 20%’로 낮추는 안을 추진 중이다. 글로비스는 현재 총수 일가가 29.9%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가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매각할 계획이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한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모듈·AS 부품 사업의 분할과 합병을 승인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0.61대 1로 결정됐다. 현대모비스 주주는 주식 1주당 현대글로비스 신주 0.61주를 배정받는다. 공정위는 이날 "현대차 기업이 시장요구에 맞춰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박태희·문희철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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