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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시 한수] 평창 성화대를 달항아리로 만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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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윤경재의 나도 시인(5) 

백자 달항아리(보물 1437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달항아리(보물 1437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달항아리

인연의 시선들을 겹쳐 품은
달의 원융을 닮아서
속 깊은 배추 고갱이 같아서

넉넉한 입 다소곳한 발
하늘로 향한 자태에도
어그러진 허리선은 불의 농담이어서

유백색 두 편을 붙여 어슷하니
세상 단 하나를 이룬 채
비어도 네게 맞추는
애달픈 마음의 빙렬이어서

일상에 물든 땟물을 멀리 어루만지면
달이 담겼던 장맛이
숭늉처럼 느껴질 때
나를 넘어
도공의 땀이 밴 익살까지
온몸으로 산 흔적들이 환히 빛난다

[해설] 솔직·소박·여유·융합…우리 정서 적절히 표현

지난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성화가 점화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성화가 점화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뜻깊은 행사였다. 많은 우려에도 성공리에 마쳐 무척 다행이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치르는 커다란 국제 행사였기에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릴 호기였다. 무엇보다 올림픽 행사 기간 내내 타오른 성화대 형상을 달항아리에서 찾아낸 점은 아주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달항아리는 조선 영정조 시대에 실학이 싹트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백자는 절제와 품격, 그리고 자유스러움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런 정신이 잘 나타나는 것이 분청사기이며 상감백자이다. 고려 때 귀족들이 완상하려고 제작한 고려청자와는 성격이 달랐다.

영정조 진경시대에 들어서 유백색의 백자 도자기는 달항아리와 청화백자라는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중에 달항아리는 중국과 일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태토는 흙이 지닌 무게 탓에 길쭉한 항아리 형태로는 빚을 수 있어도 크기가 크고 둥근 구 형태로 빚기는 어렵다. 태토가 중력에 영향을 받아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난점을 극복하고자 조선 도공은 번득이는 재치를 부렸다. 먼저 큰 대접 형태로 위아래 짝을 빚은 다음 서로 엎어 하나로 이어 붙였다. 그러나 본래 한 몸통이 아니라서 불가마에 들어간 구형은 불의 센 기운에 이은 부분이 변형되어 조금씩 어그러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달항아리 작품은 대개 허리선이 살짝 찌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아마 일본이나 중국 도공 같았다면 이런 결점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 깨어버렸을 것이다.

한국 도공의 기지와 여유

그러나 한국의 도공은 기지와 여유, 해학이 있었다.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하려는 민족 정신이 배어있던 덕분이었다. 또한 도자기 허리선이 어그러져도 그 참 멋을 골계미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정원은 산과 들의 모습을 그대로 집안에 들여놓을 줄 알았다. 굳이 땅을 파내고 변형하여 인공미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런 정신이 바로 진경 정신이다. 창덕궁이 그 좋은 예이다.

크기가 한 아름이나 되는 달항아리는 지름이 40여cm 정도나 돼 제법 컸다. 넉넉한 용적에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각 가정에서는 달항아리 안에 간장이나 된장, 기름을 담아서 썼다. 도자기 본래 역할을 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약간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깨지거나 망실되어 남아 전하는 숫자가 적다.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무심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들. [사진 호림박물관 제공]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무심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들. [사진 호림박물관 제공]

조선 초기 사대부 정신은 고려 때와 달랐다. 도(道)의 추구를 귀족화한 소수에게만 한정하지 않았다. 도의 정신을 많은 사람과 평등하게 나누고 일상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정도전 등 개국 초기 사대부들은 한양도성을 축성하고 네 성문을 세웠는데, 네 대문에다 인간 본성인 ‘인의예지 4단’을 붙여 성문 이름을 지었다.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 그것이다.

즉 도와 세속의 분리가 아니라 ‘도와 세속이 일치하는 사회’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도심(道心)이 일상과 분리되면 몇몇 사람만이 도를 독점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과 계급이 생기게 되고 점차 사회는 자유가 억압받게 된다.

종교만 해도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다종교 국가이며 종교 갈등이 전혀 없는 나라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세계가 놀라고 있다. 본래 태생적으로 우리 심성에 신앙심이 들어 있다. 우리 조상은 정화수를 떠 놓고 달을 향해 빌었으며, 부뚜막 신, 아랫목 신, 우물 신 등 일상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여겼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 자유와 평등 정신이 강하다. 우리가 백의민족인 이유도 옷에 물을 들일 염료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굳이 신분의 차별을 세밀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급이 있는 사회는 옷의 종류와 색깔이 계급별로 다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이해하지 못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바로 평등의식이다. 일본은 소수의 무사 계급이 항복하면 그 아래 민중은 당연히 복종할 줄로 알았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의리였다. 자기네끼리 전투에서는 늘 그랬다.

그러나 조선 백성은 달랐다. 왕이 도망을 가고 조정과 왕성이 비었어도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었다. 의병군과 승군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 일본군과 싸웠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한때 아무 권한이 없었어도 백의종군하며 수군과 함께 싸워 전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의란? 우린 정의 vs 일본은 의리

우리와 일본인은 같은 동양인이어도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점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의(義)이다. 우리는 ‘옳을 의’자를 말할 때 인간 본성인 사단 즉 ‘인의예지’를 떠올린다. 우리에게 의는 천부의 정의(正義)로서 다가온다. 그러나 일본인은 의리(義理)를 떠올린다고 한다. 의리는 어떤 조직에서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걸 말한다. 지도자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이런 의리 정신 때문에 일본은 숱한 전쟁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일제강점 시대에도 한양도성 사대문 중에서 정의를 상징하는 서쪽 대문인 돈의문을 신작로를 낸다는 이유를 들어 허물어버렸다. 한국인에게 흐르는 정의에 대한 생각을 허물고 자신들에 복종하는 의리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김환기의 '달과 매화'(1961), Oil on Board. [중앙포토]

김환기의 '달과 매화'(1961), Oil on Board. [중앙포토]

달항아리를 다시 보자는 운동은 미술계에서 시작되었다. 김환기는 달항아리의 멋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그림에서 달항아리 허리선을 어슷하게 그었다. 좌우가 심하게 편차가 나게 그렸다. 비대칭을 강조하였다. 그가 그린 달항아리 연작들은 파격과 역설, 따뜻함이 배어 나온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설치예술가 강익중 씨의 '삼라만상'. [중앙포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설치예술가 강익중 씨의 '삼라만상'. [중앙포토]

강익중은 한글이 음양 이치로 만들어졌듯이 달항아리도 상하 음양을 합쳐서 제작된 것이라 하였다. 그의 설치작품 삼라만상은 달항아리 그림들이 긴 문장의 쉼표처럼 곳곳에 새겨 있다. 달항아리를 통해 세상이 숨 쉰다는 뜻이리라. 그는 수천 개의 작은 캔버스가 평등하게 모여 커다랗게 하나로 원융을 이룬 세상을 표현하였다.

최영욱은 달항아리 표면에 난 빙렬을 강조하여 그렸다. 카르마(업)라는 연작에서 그는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자신의 기억을 통해 실금처럼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인간의 인연을 표현하였다. 수십 번 덧칠한 물감에 돌가루를 입히고 또 사포질하여 만든 질감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 도자기 같은 느낌을 준다.

직접 쳐다볼 수 없는 태양과 달리 밤하늘 둥근 달은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데 모아 녹여준다. 달항아리는 한쪽에서만 보는 게 아니다.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볼 때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상하좌우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변화를 허용하였기에 나오는 해학이다. 솔직하게 드러낸 결점이 결점으로 남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매력으로 승화되었다. 현존하는 달항아리 작품은 비슷한 게 하나도 없다. 모든 작품이 달라서 각각 독특한 매력이 있다.

기울어진 입은 두께가 조금씩 다르고 선도 어슷하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허리선은 좌우가 비대칭이며, 표면도 담겼던 내용물이 배어 나와 물든 땟물 자국과 유약이 갈라져 생긴 빙렬 탓에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잘게 갈라진 빙렬에서는 타인의 아픔에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애달픈 측은지심이 나타난다.

실제로 달항아리 표면을 손으로 더듬어 만지면 또 새롭게 다가온다. 처음 만든 도공의 숨결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면서 쓸고 닦고 했을 선조들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달항아리는 이렇게 우리 민족의 심성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다. 솔직함, 소박함과 여유, 파격 그리고 융합하는 기지는 만물 평등성과 함께 불의 신에게도 의탁하는 여유를 지녔다. 이런 융합의 정신을 새롭게 가꾸어 다가오는 미래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온고지신의 자세이리라.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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