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고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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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국가치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제한불가능의 절대자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권력의 도전을 받아왔다. 이같은 학문과 권력의 마찰은 지금 이땅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 3일과 4일 재야10개 학술단체의 연합심포지엄에서 비롯됐다. 발표자로 나온 충북대 서관모 교수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변혁운동의 성격은 노동자 계급이 헤게모니를 갖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학계 일각에선 『그런 역사발전의 이론은 이미 진부하다고 낙인찍힐만큼 낡은 것』이라고 반박하고 『놀라운 것은 대학교수가 북한당국의 혁명노선과 크게 다를바없는 이론을 공공연히 내세워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후 검찰은 서교수에 대해 소환장을 냈다. 서교수는 이에 불응했고 학계에서는 검찰조치를 규탄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학문에 대한 공권력개입을 소리높이 비판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중세말부터 시작됐다. 당시의 대학들은 교황권으로부터의 학문간섭을 배제하기위해 싸웠다. 이 싸움은 근대에와서는 왕권, 현대는 관권을 상대로 계속돼 왔다.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는 학문연구의 자유와 연구성과에 대한 발표의 자유, 강의의 자유, 학문활동을 위한 집회·결사의 자유는 물론 넓게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자치의 자유까지 포함된다. 우리 헌법은 이 모든것을 보장하는 광의의 학문자유 원칙을 채택하고있다. 그결과 「만인의 기본권」이라는 학문의 자유가 우리나라에서도 확고히 제도화돼 있다.
학문의 자유 가운데 연구의 자유는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다. 그밖의 자유는 사회적 전파성때문에 최소한의 제한이 불가피한 「상대적 자유」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제한의 한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학문의 자유는 그 발전수준과 사회환경속에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사회수준과 환경에서 서교수의 발표내용은 어떻게 처리돼야할 것인가. 우리는 서교수의 학문활동에 대한 검찰의 간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것이 학술활동의 영역안에서 이뤄진 행위라는 점이다. 서교수는 우리사회의 성격규정과 노동계급 중심의 변혁이론을 학문적방법으로 도출해 냈다. 그것을 발표한 장소도 학자와 대학생들이 모인 대학내의 학술회의였다. 발표장엔 반대견해를 가진 학자도 초대되어 자유토론이 열띠게 벌어지지 않았는가.
둘째는 검찰개입의 현실성 문제다. 서교수의 발표내용은 운동권세력에 의해 70년대부터 주장되고 발표돼 왔다. 최근엔 보다 과격한 좌익적 내용의 도서들이 출판되어 시판되고 있다. 공산주의 원조인 「마르크스」의 『자본론』, 「레닌」의 『제국주의론』등 좌익의 바이블들까지 번역돼 팔리고 있다. 더구나 운동권이 그런 이론의 실천활동을 펴고있는 지금 학술적 수준의 발표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실익이 있겠는가.
셋째는 형평성 문제다. 좌익서적의 출판과 좌익이론의 행동화는 방관하면서 학문적 단계의 연구발표를 법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공산당허용을 비학술적 장소에서 주장한 송복 교수가 묵인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넷째는 서교수가 법리적 제한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교수의 발표는 대중선동 행위라고 볼수 없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파괴할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거나 성질상 도덕 또는 양속에 위배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민주화작업을 퍼나가고 있다. 통일논의도 개방키로 했다. 검찰개입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도 거리가 멀다.
서교수 문제는 『학문활동이 헌법질서를 정치적으로 부인하는 현실참여일지라도 그것이 비판적 인식과 이론적 탐구의 단계에 머물러있는 한 학문의 자유는 보장된다』고한 어느 헌법학자의 이론과 『서교수의 입장은 학문적 토론을 통해 여과될일이지 공권력의 개입대상이 아니다』라는 사회학자의 주장위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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