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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 경영방식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계절과 유행이 바뀌고 옷이 낡으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듯이 정부의 기구나 제도 역시 이와 다를바 없다.
정부 수립후 40년이 지났고 행정기능과 수요 또한 급증하고 복잡·다양·다기화되었는데도 정부기구만은 양적 확대나 땜질정도에 그쳐왔다.
더구나 중앙집권화와 기획·지도·감독 등의 중추기능은 이상비대로 치달았을뿐 중앙과 지방행정간의 사무의 적정배분이나 조정, 일선행정기관의 강화는 등한시해 왔다.
이를테면 중앙과 지방, 본부와 일선기관, 지시 및 명령기관과 하부기관간의 인력배치도 피라미드처럼 균형을 이루어야하는데도 지시하고 간섭하고 명령하는 기관만 잔뜩 비대시켜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행정조직상의 불균형은행정의 관료화를 심화시켰을뿐 아니라 행정의 낭비와 중복과 비능률을 부채질했다. 행정의 최말단에 속하는 동과 면직원이나 일선 교사들이 하루에도 10여건의 유사한 지시나 명령을 상부로부터 받고 보고서를 쓰느라 정작 해야할 사무를 못보는 현실에서도 이를 익히 알수 있다.
행정개혁위원회가 지방자치제 실시와 관련, 지방행정계층구조를 축소시키고 구역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 행개위가 구상중인 방안은 현행 도·시→군·읍→면으로 되어있는 3단계 지방행정기구를 도·읍→면으로 2단계 구조로 개편하고 도의 규모도 축소, 일본의 현처럼 세분화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같은 방안은 행정개혁이 논의될때마다 오래전부터 거론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운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이 바람직한건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군의 폐지나 행정관할 구역이 변동됨으로써 불이익을 입을 정치인과 공무원, 일부 지역주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논의 단계에서 그쳐왔다. 더구나 주민들 가운데는 군청을 없애면 군자체가 소멸되는 것처럼 오인, 고향을 잃게 된다며 반대를 해왔다.
사실 내무부 등 중앙행정부처와도·시→군·읍→면으로 되어있는 4단계 행정구조는 어느모로 보나 합당치 않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도 있듯이 지금과 같은 행정구조는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현행 행정구조중에서 군 행정기관을 없애면 인원과 예산을 크게 절약할 수 있고 행정능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 행정도 이제는 「경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행정을 직접 집행하고 대민접촉 등 주민들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일선행정기관이다. 앞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공개와 참여 등 민주행정을 원만히 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선행정요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넉넉하다면 인원을 대폭 늘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재정사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자체 재정수입으로 현 인원의 인건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군이 전국 1백39개 가운데 1백9개(78%)나 되고, 시 또한 57개시 가운데 13개(23%)나 된다.
더구나 지자제가 실시되면 지방의회를 열어야 할 건물이 당장 필요하고 의회를 운영하는 엄청난 비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의회가 들어설 건물을 제쳐놓고서라도 선거비용과 의회사무원, 의원세비와 기타 운영비가 해마다 어림잡아 5천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사실로도 사정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도를 증설하고 관할구역을 재조정하는 것도 지역감정해소와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고 행정능률을 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현재의 헹정구역은 조선조때 산맥과 강을 따라 구획된 것을 기초로 삼은 것이다.
사방에 도로와 교량이 새로 생기고 생활권역이 크게 달라졌는데 정치인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못이겨 언제까지 불합리한 상태로 방치해 둘수만은 없다.
모처럼 발족한 행개위가 이러한 외압과 이해관계를 초월, 과감한 수술을 단행하겠다고 공약한만큼 이번만은 좋은 결실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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