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시진핑 무역전쟁에 ‘돼지가 기가 막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돼지가 G2(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의 ‘우물’에 빠졌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맞서 중국은 미국산 128개 품목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이 중 눈에 띄는 게 돼지고기다. 미국산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전 세계 돼지고기 절반 소비 #미국산 돼지고기에 25% 보복관세 #트럼프 표밭 양돈농 노린 정밀타격 #미 선물시장 돼지고기 가격 급락 #중국 더 센 카드 ‘돼지사료 대두’ #4억 마리 키우는 중국에도 부담

돼지고기는 중국에는 정치적·경제적 의미가 큰 품목이다. 중국은 돼지고기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며 수입국이다. 지난해 중국은 5494만t의 돼지고기를 소비했다. 전 세계 소비량(1억1059만t)의 절반가량이 중국인의 배 속에 들어간 셈이다.

중국의 돼지고기 생산량(5350만t)은 소비보다 부족하다. 지난해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량(165만t)이 세계 최대를 기록한 이유다. 돼지고기를 뺀 중국인의 식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돼지고기는 중국 내 육류 소비의 60%를 차지한다. 도축업·유통 등을 포함해 돼지와 관련한 종사자만 1억 명에 이른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돼지고기의 비중은 3% 수준이다. 미국산 돼지고기에 관세를 높게 매기면 물가가 뛸 수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정치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중국의 독특한 경기 사이클인 ‘돼지주기(猪周期)’가 대표적 예다. 수요·공급 불일치로 돼지 가격이 출렁이며 사회가 불안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대미 보복 품목으로 돼지고기를 앞세우는 강공을 택했다. G2 통상 전쟁에 돼지가 기가 막히게 된 꼴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돼지고기(17만t)는 중국 전체 수입량의 14%였다. 이를 중국의 연간 돼지고기 소비량으로 따져 보면 0.3%에 불과하다. 미국산 돼지고기 값이 오른다고 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은 작다는 의미다.

모니카 투 상하이 JC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반격할 카드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품목을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돼지 때리기에 제대로 한 방 먹은 곳은 미국이다. 중국(홍콩 포함)은 물량 기준으로 따졌을 때 멕시코에 이은 두 번째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국이다.

미국 양돈업계는 막대한 중국 수요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왔다. 중국으로 수출길이 막히면 미국 양돈업계는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이미 시장은 반응했다. 23일(현지시간)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돼지고기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73.6센트까지 떨어지며 4.3% 급락했다. 선물 거래를 시작한 2016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양돈업계가 몰려 있는 미시간과 위스콘신 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돼지고기를 많이 생산하는 상위 10개 주 중 8곳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수입 돼지고기를 검역하는 중국 관리[AP=연합뉴스]

지난해 수입 돼지고기를 검역하는 중국 관리[AP=연합뉴스]

래리 카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농업경제학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층을 감안한 카드를 골라 정밀 타격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돼지 때리기는 무역 전쟁의 맛보기 수준이다. 더 센 카드가 있다. 대두(콩)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216억 달러의 대두를 수출했다. 이 중 대중국 수출액은 124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수출 대두의 60%가량을 중국이 사들였다.

중국 입장에서도 대두는 예민한 품목이다. 대두는 4억 마리에 달하는 중국 돼지의 사료로 쓰인다. 중국 음식에 많이 쓰이는 콩기름도 관련돼 있다. 대두에 관세 폭탄을 터뜨리면 사료와 식용유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돼지고기 값도 오른다. 식탁 물가의 오름세를 부추길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무역 전쟁이 확산하면 대두를 제물로 삼겠다는 자세다.

환구시보는 22일 사설에서 “중국이 미국산 대두의 대체재를 구하기 어렵고, 식용유와 돼지고기 가격 상승을 우려해 미국산 대두에 높은 관세를 매기지 못할 것이란 관측은 잘못됐다”고 전했다. 브라질 등 남미산이 미국산 대두를 밀어내고 있으며, 중국 중산층을 중심으로 올리브유 소비가 늘면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