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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10년7개월만에 한·미 정책금리 역전…자금이탈 가능성은 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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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데뷔 무대는 무난했다.

미 Fed,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물가 부진에도 실물 경기 자신감 반영 #올해 3차례 금리 인상 전망 기조 유지 #내년 인상 전망 3회로 높인 절충안에 #시장 “Fed 연내 금리 4번 올릴 수도” #미국 재정적자, 금리 인상 변수될 듯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는 올렸다. 인상을 향한 가속 페달을 밟지는 않았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도 않았다. 내년 금리 인상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을 시사하면서도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을 줄이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21일(현지시간) 연방기준금리를 연 1.50~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만의 금리 인상이다.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제로 금리’ 이후 6번째 금리 인상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는 뒤집혔다. 10년 7개월 만이다.

 금융 시장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을 당연시했다.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향후 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이다.

 Fed는 올해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치를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12월과 같은 세 차례 인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달라진 것은 내년의 금리 인상 횟수 전망치다. 2차례에서 3차례로 올려잡았다. 2020년에는 두 차례 인상을 전망했다. 2020년까지 7번에 걸쳐 기준 금리를 올릴 것이란 예상이다.

 마켓워치는 “향후 금리 정책과 관련해 Fed가 시장에 너무 매파적(통화 긴축) 신호를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절충적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메시지에도 시장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Fed가 긴축 브레이크를 좀 더 세게 밟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하반기로 갈수록 긴축에 속도를 내며 4차례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Fed가 드러낸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다. 물가가 목표치(2%)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이유다. 파월 의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 경기 호조로 일자리가 늘고,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전망치에서 이런 자신감이 드러났다. Fed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2.5%에서 2.7%로 0.2%포인트 올려 잡았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에서 2.4%로 0.3%포인트 높였다.

 현재 4.1%인 실업률은 올해 3.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핵심 지표인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기존과 같은 1.9%로 전망했다.

 시장이 올해 4회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위원들의 개별 금리 인상 전망치를 보여주는 점도표에 있다. 올해 4차례 금리 인상을 전망한 위원의 수가 늘어났다. 위원 15명 중 7명이 올해 4번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종전(16명 중 4명)보다 그 수가 많아진 것이다.

 앤드루 윌슨 골드만삭스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공동부문장은 “Fed의 중간값은 올해 3차례 금리 인상을 가리키고 있지만 Fed의 메시지가 진화하며 올해 4번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월 FOMC 회의에서 매파의 색채가 더욱 짙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의 전망대로 Fed가 움직인다면 미국 정책 금리 상단은 연 2.25~2.50%에 머물게 된다. 반면 한국은행은 올해 1~2회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정책금리는 연 1.75~2.0%가 된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감안하면 양국 간 금리 역전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빌미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금리 역전이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일단 시장이 ‘예정된 이벤트’였던 미국의 정책 금리 인상을 선반영한 만큼 급격하게 흔들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시장금리는 이미 역전됐다. 21일 한국 국채 10년물은 2.732%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1일(현지시간) 2.88%를 기록했다. 같은 날 국채 1년물 금리도 한국은 1.892%, 미국은 2.04%에 거래를 마쳤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는 이미 역전된 상태인 데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가 장기화한 만큼 한국의 장기 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는 한 외국인의 국내채권 매도 압력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두 차례 금리 역전 경험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첫 번째 금리 역전기는 1999년 6월~2001년 3월이다. 닷컴 버블로 시장이 과열되자 Fed는 99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4.75%에서 6.5%까지 끌어올렸다. 2000년 2월 한국은행이 콜금리(당시 기준금리)를 5.0%로 인상했지만 미국의 뒤를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기 둔화 조짐에 Fed가 2001년 1월부터 3월까지 기준금리를 1.5%포인트 끌어내리며 금리 역전은 끝났다.

 두 번째 금리 역전은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까지 25개월간 계속됐다. 닷컴 버블 붕괴로 무너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Fed는 2003년 기준금리를 1%까지 인하했지만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2004년 6월부터 2년간 17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이후 2007년 9월 Fed가 0.5%포인트 금리를 내리며 한국(연 5.0%)보다 낮아졌다.

 두 차례의 금리 역전기에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었다. 1차 때는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갔고 2차 때는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지만 전체자본유출입은 모두 순유입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은 양호했다.

 Fed의 통화 정책에 끌려다니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물가가 가라앉은 데다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ㆍ중국 등 아시아 중앙은행이 Fed의 금리 인상을 빠르게 따라갈 필요성이 줄고 있다”며 “무역 전쟁의 위험도 정책 담당자들이 숨 고르기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향후 한국의 금리 인상의 변수는 금리 역전보다 미국의 재정적자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재정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서는 만큼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물량 부담이 커지며 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 더 부담스러운 요인”이라고 말했다.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올해 1조 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전년보다 80% 늘어난 규모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보유자산 축소에 나서며 채권 수요도 줄고 있다. 채권값 하락(채권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며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면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국내 시중 금리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가계와 기업의 빚 부담이 커지게 된다. 지난해 가계 빚은 지난해 1450조원을 돌파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해 자금 우려 유출이 가장 우려되는 만큼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을 좀 더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Fed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 반응과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22일 ‘금융ㆍ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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