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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양치기출신이 마라톤 원년챔피언 스피리돈 루이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에기네 루이스』-.『루이스가 되었다』로 직역되는 이 그리스語는『빨리 달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의 마라톤(40km) 우승자인「스피리돈·루이스」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사실 그의 기록은 2시간58분50초였으므로 요즘의 감각으로는 그렇게 빨리 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사람들에게는 마라톤이 기원전 4백90년 그리스군의 전령「페이디피데스」가 먼길을 쉬지않고 달려와 그리스와 페르샤간의 마라톤 평야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고는 탈진해 죽었다는 전설적 유래에서 비롯된 만큼 최초의 우승자인 동국인「루이스」에의 존경의 뜻을 담고 있는 이같은 표현이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수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에 마라톤을 집어넣자는 제안은 고대올림픽을 부활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던 1894년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사학자였던「미셸·브레알」과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쿠베르탱」남작으로부터 나왔다.
아테네대회 조직위는 이를 쌍수들어 환영했으며「브레알」이 순금컵, 그리스의 대부호「아베로프」 가 골동품 화병을 우승자 몫으로 내놓음으로써 마라톤은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주목받게됐다.
1896년4월10일오후, 17명이 출전한 마라톤 레이스에서 양치기 목동이자 군사우편 전령출신으로 알려진「루이스」는 줄곧 뒤지다 막판 대분발로 1위로 골인, 스타디움 안팎의 10만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귀빈석에 앉아있던「조지」왕과「콘스탄틴」왕세자는 직접 트랙에 내려가「루이스」를 좌우로 호위하며 골인테이프를 끊을 정도였으니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다. 요즘 같으면 반주(반주)금지규정에 걸려「루이스」는 실적당했을 해프닝이었다.
「루이스」는 우승직후 바로 시골고향으로 내려가 생업에 복귀한다.
각계로부터 막대한 선물(시계·보석·평생 무료이발권·무료식사, 심지어는「아베로프」로부터 딸을 주겠다는 제안까지)이 쏟아졌으나「루이스」는 다 거절하고 시골마을에서 식수를 나르는데 필요한 말과 마차만 가졌다.
일설에 따르면「루이스」가 마라톤에 출전한 것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생에게 은전을 베풀어 주십사하고 왕에게 읍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도하나「루이스」에겐 동생이 없는 것으로 미뤄볼때 이는 호사가들이 지어낸것 같다.
순진한「루이스」는 그 명성을 다른데 이용하려 하지않고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에 관한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다.
우편배달부 츨신의 마라토너로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 출전, 4위를 차지했던「펠릭스·카르바얄」(쿠바) 도 유명하다.
5척단신이었던 그는 올림픽 출전을 결심한뒤 저축했던 돈과 주변의 도움으로 배를 빌어 뉴올리언스에 도착했으나 그곳에서 주사위 야바위꾼에게 걸려들어 무일푼 신세가 된다.
지나가는 차도 얻어타고 걷기도 하면서 세인트루이스에 당도, 마라톤 스타트라인에 섰을때 그의 차림새는 과연 볼만했다. 묵직한 행군용 구두에 긴 바지, 긴소매 셔츠, 그리고 베레모-.
투원반 선수였던「마틴·셰리던」이 보다못해 가위로 그의 바지 단을 무릎까지 갈라줬다.
32도의 폭염속에 출발선을 박차고 나온「카르바얄」은 10km도 못가 거품을무는 선수들이 즐비했는데도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았으며 연도의 구경꾼들과 짧은 영어로 대화도 주고받으며 경쾌하게 뛰었다.
과연 이 무명의 시골뜨기는 우승할 것인가-. 그러나「카르바얄」은 레이스 중반 목이 말라 가까운 과수원에 들어가 풋사과 몇개를 따먹었는데 이것이그만 복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아깝게 4위에 그쳤고 경기시간은 워낙 오래걸려(당시 3위가 3시간47분33초)체크되지 않았는지 현재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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